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20대 시절 천방지축 유럽 여행기(1)

런던행 비행기

90년대 초의 일이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된 지 몇 년이 지난시기였다. 대형서점의  여행출판물 부스마다 해외명소 소개와 기행문 책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도 미지탐험에 대한 역마살 인자가 다분하고 어린 시절 김찬삼 여행기에 심취한 적도 있어 이쯤의 해외여행같은 감수성적인 시류에 편승함은 물론이었다.


서점에 들를 때마다 습관적으로 유럽여행기를 펼쳐 본 지 수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그동안 여행 안내서와 여행 경험담등 수십 권의 책자를 섭렵한 것 같다.


유럽배낭여행을 계획한 후부터 나의 모든관심은 한동안 그것에 집중되었고 또한 그 계획에  나의  물질적,심리에너지가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

이제는 계획한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모든 나의 생활이 뒤틀려지고 멘붕에 빠질 것 같은  단계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유럽으로 출발해야  된다는 당위성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당시 20대 후반   나의 목표의식과 추진력은 일사천리였던 것 같다. 해외여행의 추진뿐 아니라 창업의 목표도 거의 실행단계에 와 있었기 때문이다 .사업을 시작하기 직전에  두 달간의 천방지축 유럽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천방지축이란 표현은 유레일패스가 유럽공공철도를 시간, 장소,횟수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타고 내릴 수 있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먼저 여행사를 선택하여 왕복 항공권을 예매하였다. 첫 목적지는

런던 히드로공항으로 홍콩을 경유하는 영국항공이었다.

나 홀로 떠나는 여행이었지만 상당한 액수의 비용절감을 위해 1개월 후에 출발하는 단체항공권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다음 차래 준비물은 여행의 필수요소인 현지에서의 두 달 동안 교통해결과 숙소대책이었다.  유럽철도 이용권과 영국철도 이용권 즉 두 달짜리 유레일패스와 일주일의 브리티시레일패스 구입은 물론  숙박을 위한  국제유스호스텔  이용권을 준비하는 등 여행목록에는 많은 것이 기록되어  있었다.


 한 달 후 유럽여행 출발을 위해 큼직한 룩색배낭을 둘러메고 김포공항에  당당히 몸을  드러낼 수 있었다. 9월의 첫날인데도 여름 늦더위가 오전부터 느껴졌다.

제주여행을 한 적이 있어 비행기는 타봤지만 해외여행은 난생처음이었다.


하지만 최초의 해외여행에 나 홀로  임하는  두려움 정도는 미지의 외국여행에 대한 설렘과 선진유럽에 가본다는 호기심에 상쇄되어 문제가 될 수 없었다.


물론 그동안 유럽여행의 많은 선행 경험담과 정보책자들 구독이 든든한 자신감의 원천이 된 것은 사실이었다.


오후에 항공기를 탑승하고 홍콩으로 출발했다.

다행히 맨 창가 쪽 좌석에 앉을 수 있어서 저만큼 아래 흰 뭉게구름과 초록의 지상뷰 그리고 간간이 화물선이 떠가는 동지나 바다를 굽어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창박에 어스름이 깔릴 때쯤 홍콩 카이탁공항(현재는 첵랍콕이전)에 다다랐다. 옆에 앉은 중국계 중년여성은 홍콩의 야경이 아름답다고  손으로 창 밖을 반복해서

가리켰다.


항공기는  홍콩 밤하늘을 J자형태로 선회하면서  카이탁공항에 안전하게 착륙하였다. 홍콩의 현 공항입지가 안 좋다는 평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환승대기를 위해 두 시간가량을 후끈한 남방열대야의  이국적인 공항 내 면세점을 배회하며 여유를 보였다. 당시에는 홍콩이 영국령일 때라서 공항의 사람들도 백인, 황인, 흑인들이 뒤섞여 외국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피부색이 까무잡잡했지만 눈빛은 총명해 보이는 친절한 여성승무원의 안내를 받으며 다시 항공기에 탑승하였다.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3만 피트 상공의 밤하늘을 13시간가량 더 비행했다.

다음날 새벽  런던하늘에 불그스래한 여명이 비출 때쯤 히드로 공항에  비행기는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리고 히드로공항의 낯설지만 상쾌하고도 조금은 서늘한 새벽공기를 가르며 입국심사장으로 총총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입국장은 우리처럼  아시아 쪽에서 도착하는 모닝캄 비행기들 때문에  다소 혼잡했다.


유럽의 첫 관문인 이곳에서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1백 미터에 달할듯한  구불구불한 긴 줄에 파묻혀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의 위상이 지금만 못해서인지  입국장에는 미국인, 유럽인, 일본인 입국전용통로만 운영됐기 때문이다.

입국심사는 느리기만 해 시간은 더욱 지채 되고 있었다. 하지만  입국심사과정에서  나에게 벌어질 난감한 에피소드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직은 까맣게 모르는 채였다.

리뷰(2)

작가의 이전글 함박꽃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