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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 이야기

동강 그 장구한 세월

한동안 정선, 영월과 인연을 맺다 보니 이곳의 큰 물길인 동강과 자연스레 친숙하게 되었다.

태백 검룡소를 발원으로 태백준령언저리를 두루두루 굽이쳐 흐르는 동강은 이 지역의 유일한  생명의 젖줄임에 틀림없다.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는 강물의  조각품들이 곳곳에 신묘한 풍광을 이루었고 맑디맑은 동강물까지  보는 이를 함께 유혹하니 누구인들 이끌리지 않겠는가. 따라서 하절기에 밀려드는 피서객과 모험적 래프팅 애호가들로 강변과 계곡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하지만 나는 아름다운 풍광에 더하여

영겁의 세월 동안 빗물이 모여 깊게 파  놓은 동강의 지나온 내력에 더 관심이 간다. 이렇게

태고적부터 구절양장 협곡동강의  형성과정을 회상하노라면 자연의 유구함과 인간사 미미함을 동시에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높고 평평했던 육지가 빗물에 씻기고

마모되어 계곡을 파내리고 하류로 또는 바다에 이르러 흙이 되어 쌓인다.

또 그 흙이  깊은 곳에서 굳어지고  바위가 되어 준령으로 솟아올랐으니 그 세월만도 일천만 년의 주기를 이룬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이렇게 느리고도 기나긴 자연의 시간 속에서  인생사는 한낱 촌음에 지나지 않으니 여기 동강가에 홀로 서서 겸손을 배우지 않을 수 없다.


동강을 따라 내려와  청령포의 빼어난 풍광과 동강물길의 끝없는 변신의 흔적에 눈길이 머물렀다.


물론 이곳은 우리가 그 역사를 잘 알고 있듯이 오백 년 전  왕권투쟁과 관련된 유배지로서 단종애사가 떠오를 수 있고 그로 인해 더 유명한 명소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학창 시절  청령포 지형 이야기가 머릿속에 상상력을  더해 주고 있다.


청령포 부근은 동강의 강물로 인해 땅모양과 물길이 크게 바뀐 곳 중의 하나이다.

수만 년 전에 동강이 영월 방절리  쪽으로 십여 리 밖을 휘감아 돌다가 어느 때쯤인가 홍수기에 현재 청령포 지점 얇은 절벽이 무너져 강 물길이 짧게 현상태로 바뀐 곳이다.


 지리학용어 미앤더코어는 방절리 부근의 섬 같은 높은 산을 의미하며 십리가 넘는 옛 물길 구하도는 수천 년간  우각호, 저류지 그리고 농경지였으며  최근 야심 찬 습지공원이 조성되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방절리 산록절벽의 계단식 하안단구는 수천만 년의 무지한 세월 동안 강물의 침식작용 기록이니 1만 년도 못 되는 인간역사는 참으로 하찮기 그지없슴을 또다시 느끼게 한다.


그동안 동강의 강물이 만들어 놓은 평탄하고 풍족한 수변지형을 생각해 보자. 그곳에 깃들어  수만 년 동안 시대를 달리 하며 서식했을  선사인들, 현생인류 등 인간군상들의 행태가 그려진다.


하지만 장구한 세월, 이 지역의 험준한 산골짜기를 휘감으며 파내려 간  깊은 상처인 동강은 현세에 이르러 자연의 걸작품으로 승화되어 우리 인간들의 영혼을  감탄케 하고 있다.

아우라지 , 나리소 , 한반도 지형, 어라연, 그리고 청령포 등 절경들과  강물의 침식에 의해 드러난 여러 곳의 석회암 동굴들은 명승지가 된 지 오래이다.


나리소 전망대의  인근 동강변을 나 홀로 하염없이 거닐면서 영겁의 시간과 흐르는 물의 힘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수백 미터의 암벽을

깎아내려 기암절벽을 만들었고 강변에 수천수만 평의 퇴적토와 모래톱을 쌓아 인간에게 농토를 제공했다.

 호박돌, 조약돌, 하얀 모래알을 옮겨와 강변을 유려하게  해 놓았으니 강물의 한 일이 왜 이리도 많을까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갈수기인 요즘에 물의 깊이는 사람키에 못 미치지만 홍수기의 물흐름 자국을 살펴보니  그 열 배도 넘을 듯하다. 따라서 가공할 강물의 위력을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는다.

또한 수십 년 수백 년마다 찾아오는

대홍수는 동강의 지형이 크게 바뀌었음을 미뤄 짐작하게 해 준다.


오늘도 강물은 유유히 흐르고 동강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그 시간 속에서 나의 한평생의 시간이

한 점을 얹을 수 있음에 영광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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