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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산행

산행

장마가 잠시 물러간 후 날씨가 쾌청해졌다.  칠월초순, 비 그친 휴일의 한낮 재빠른 무더위 차지가  됐다.

가족의 외출로 오랜만에 집안에 홀로 남게 되어 맘 편한 휴일이란 느낌이 들었다.  시원한 집안에서 하루를 보낼까 아니면 가까운 산행이라도 할까 망설이는 중이었다. 


쇼핑과는 무관하게 이런 말이 문득 떠올랐다. "무엇을 살까, 말까 망설인다면 사지 않는 것이 낫고 여행을 갈까, 말까 망설인다면 여행을 떠나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바로 그 말이다. 따라서 오늘 나는 무작정 차를 타고 근교의 산을 향해 출발했다.


무더운 한낮에  산 입구에 도착한지라 등산객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등산로에 접어들자마자 초입에서부터 행운처럼 여름 산채꽃을  만났다. 주황색 선명한 원추리꽃이 나를 환하게 반겨주는 것 같았다.


숲 속 특유의 싱그럽고 짙은 방향성 숲 내음과  계곡의  콸콸콸, 풍부한 수량의 물소리가  등산로 입구의 분위기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풀숲과 나무에서 들리는 새소리, 풀벌레소리 특히 쓰름매미의 합창까지 숲 속의 존재감을 맘껏 과시했다.  

묵혀진 계곡옆 다랭이 논에는 철 늦은 개망초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 농후하고 숙성된 향기가 후각을 마비시킬 기세로 진하게 느껴졌다.


어젯밤 내린 장맛비에 수백 미터 산록의 초록빛이 목욕재계를 한 듯 선명하게 보였다. 등산로 오솔길 옆에 들숙날숙 터전을 잡은 토종의 국수나무, 망개나무, 싸리군락이 정감 있게 비쳐졌다.


얇은 몸통이지만 키가 유난히 길쭉한  신갈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옆쪽의 우람한 상수리나무에 키를 맞추려고 애를 쓴 흔적이 역역했다. 생존이 달린 햇빛경쟁의 치열한 몸부림이 느껴졌다.

길쭉하게 위쪽으로만 뻗어간 가냘픈 몸집에서 빛을 향한 간절함이 배어 나와 애처롭기까지 했다.


햇빛을 탐하는 소나무 한그루는 참나무 틈새에서 이미 생기를 잃은 것 같았다. 그늘 속에서 살아남기가 힘겨웠는지 말라붙은 갈색잎만 눈에 띄었다.

점점 나 자신도 산중에  흡수되면서   숲과 나누는 교감은 깊어져만 가고 있었다.


오늘 산행에서는 금북정맥 즉 차령산맥의  높은 봉우리 중  한 곳을 등산하는 모습을 묘사해 보았다.

해발 700 고지를 오르는 내내 등산로에서 만나본  숲 속의  푸른 친구들이 나에게 계속 말미를 던져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 올라보는 이 산의 등정이 높이 올라갈수록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 깊은 숲이 드리운 그늘 속 산행이 시원할 만도 하였다.

그런데 계속되는 급경사 오르막길과 높은 습도는 숨차고  땀이 비오 듯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두 시간가량의 산행 후 맛보는 정상뷰의 감상에서 오는 성취감은 그간의 힘겨움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다.


하산길은 물론 훨씬 순조롭게 느껴졌다. 내딛는 발걸음도 가벼웠고 시원하게 불어주는 바람이 한몫을 했다.

산정으로 향하는 상승기류의 시원한 바람이 더워진 체온을 한껏 식혀주었기 때문이다.


산을 내려오는 동안 내내 오늘의 산행이 보람 있게 느껴졌다. 오전에 집을 나서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 산이 고산준령은 아니지만 산행의 즐거움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춘 명산으로 인정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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