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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시민되기

국가 융성기

세계주요 나라들은 역사를 돌이켜볼 때  "참 좋은 시절"이란 국운 융성기가 있었다.

"벨 에포크 "는 19c말~20c초 프랑스의 참 좋은 시절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도 현시대에 들어와 역사상 최대의 국운 융성기를 맞고 있다.

물론 정치적 진영논리를 배제한 관점에서 전, 현 정권을 모두 포함하는 시점을 말하는 것이다.


1인당 GDP는 일본을 추월했고 경제규모가 G 7에 근접했다. 그래서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  선진국이 된 것이다.


고무적인 것은 세계적 난국인 코로나 와중에도 수출이 계속 늘고 거시경제 수치가 크게 성장한 것이다. 또한  대부분 산업분야에서 세계최고 수준에  올라와 있다는 것이 여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동안에는 세계무대에서 선진도약의 발목을 잡았던 코리아디스카운트의 망령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코리아프리미엄의 날개를 달게 되어 세계인이 한국을 선호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K산업, K컬처, 방산 등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수년 전 세계적 투자회사인 골드만삭스는 한국이 몇십 년 내  세계 2위 경제규모가 될 것이란  예측을 내놓은 적이 있다.


 물론 현재까지는 너무 비약으로 보일 수 도 있다. 그러나 경제 성장의 가속도는 예측 불허이다. 80년대까지 일본경제의 미국추력 사례를 보더라도 그러하다.


그리고 고정관념의 문제이기도 하다. 즉 80년대 중반 우리의 업체가 소니등 일본 전자업계를 추월한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결코 정상멘탈로 생각지 않았던 것과 같은 경우일 것이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언론은 "미래를 경험하려면 서울행 비행기 티켓을 사라"는 기사를 썼다.

이것은 70년대 말 한국 상품의 미국 대량진출 시기에 그곳 언론에서 "한국인이 몰려온다'는 언급과 90년대에는 '한국인은 건국 이래 최초로 자체적 의식주를 해결하게 됐다'는 그런 부류의  맨트와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이 말은 분명히 첨단사회와 모범시민을 향한 찬사의 표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온전한 참 좋은 시절이 되기 위해선 중요한 과제가 남아 있음을 우리는 인정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저면에 깔린 고질적 부조리와 약육강식적인 폐습들이 있다.

이러한 사회악을 제거해야 할 시대적 사명감이  우리 시민들에게 있다고 본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사회악 해결의 주체는 국민 또는 시민이었다는 것을 역사는 알려준다.



노블레스 노블리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이 나라의 상류층은 억압과 탐욕, 적폐의 지배층으로 항상  존재해 왔다.


따라서 우리는 시민의 힘으로 정의와 공정을 정착시켜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임진왜란 때 왕을 비롯한 양반등 지배층이 백성을 생각했는가.  충무공이 모함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마지막 해전에서 자의로 죽음에 노출시킨 것도 결국은 왕의 편협한 시기심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따라서 왜란당시 국난극복의 주체는 충무공과 의병 등 백성들이주축이었다.

그 후 구한말 우리의 지배층은 어떻했던가. 가장 무능한 왕을 세워놓고 중앙에서는 국정을 농단하고  지방에서는 탐관오리들이 득실댔으니 민생은 피폐의 극치에 달했다.


그런 와중에 이웃일본이 서양문물을  수십 년 일찍 받아들여 이 땅과 동아시아를 농락할 때  이 나라의 백성들은 온갖 악행의 피해자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한일병합 당시의 대부분 고위층들은 어떻했는가.  나라를 향한 관심보다는 자신들의 사욕과 그들의 가문만을 위하여 일본의 귀족반열이 되려고 나라를 먼저 팔려는 작태를 연출했다.


또한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친일 행각과 그로 인한 일반서민들의 피해는 나열하기 힘들 정도이다. 그리고 그들과 후손들이 뿌리내린 재계와 학계등에서의 친일작태와 식민사관은 오늘날까지 영향을 주고 있으며 우리 사회를  공정과 정의를 세우는데 짙은 그늘을 드리워 왔다.



왜 소위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우리의 고대사를 많은 사료가 증명하는데도 한반도 안으로만 특정하는 식민사관을 고수하는가.


그리고 이런 역사문제가 과거 고대사 책 속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의 동북공정 대처등 우리의 현실문제란 것을 왜 왜면하고 있는가.


또한 친일세력 청산 등에 대한 이해할만한 결론이 아직도 나오질 않는가. 물론 일제강점기와  6.25, 북한, 좌우이념 이러한 복잡하게 꼬여진 우리 근대사를 명쾌하게 청산하는 것은 힘들 수 있다.


그러나 정의와 공정을 확립하기 위해선 옳고 그름의 기준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 당사자나 후손들 후학들은 그릇됨은 인정하고 변명과 호도를 잠재우고 명품국가를 세우기 위한 역사인식의 새로운 출발선에 서야 한다.


모든 정보가 오픈되어 있는 인터넷 온라인시대이다. 국민들의 의식 수준은 지도층 수준 이상으로 성큼 나아가고 있다.


정의와 공정이 사회에 뿌리 내려지길 고대하는 시민들의 숫자가 임계치에 달해 있다고 본다. 이제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이 이를 실천하고 시스템화하는데 열의를 보여야 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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