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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반 청남대

청남대를 가다

찬바람 부는 을씨년스러운  11월 말엽이다.

평일오후에 시간 내어 대청호반, 청남대를 찾았다. 곳곳에 붉은빛과 갈색의 철 늦은 단풍잎이 존재감 없이 붙어있다,

조금씩   남아있는 빛바랜  단풍은  가을의   끝자락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것 같아  보였다.


십여분 동안 포장된  숲속길을 지나갔다. 진입로를 천천히 들어서는  내내   호반에 위치한  이곳의  풍광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다. 얼마 전 가봤던 청풍호반의  어떤곳을 지나가는 착각도 들었다.


경내에 들어서자   고급스러운 수형의 정원수들이  열지어  방문객을 환영하는듯 했다. 서울의 북악아래 그곳과 비견되는 최고권력자 휴양지의 면모가 보였다.

 호반의 들숙날숙한 여울곡률이 더해져   임산의  지세가 빼어나다.  가히 천혜의 경관이라 할만했다.

.

본관내부를 둘러보면서 금단의 구역을 쉽게 접할 수 있음에  격세지감을 느꼈다.

본관뒤뜰을 거닐며 드넓은 대청호에 내려앉은 저녁노을을 보았다.

또한 그 넓은 수면아래 잠겼을  마을의 정경이 문득 떠올랐다. 옹기종기 정감 있던 옛 마을의 수몰현장이 바로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70년대 후반  댐건설 때 1백 개에  달하는  자연마을이 수몰되었다고 한다.

 군사정권시절  주민들은  국가대사라는 대명분 아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다. 한마디 항변도 발설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아만 했을 것이다. 우리네 부모들의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생각할 때면 숙연함까지  느껴졌다.


수만 명에 달했을 그들에게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정든 고향과  문전옥답을 포기하는 일이었다.

 통한의 설움을 머금고 이주민이 되어야  했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댐이 완공되어 펼쳐진 담수호의 내수면은 위용만으로도 내륙의 바다로 비유됐다. 또한 수백리 들숙날숙  산록이 만든 그림같은 여울들은 호반의 아름다움에 극치를 더했다.


한편 이러한 내륙 호반의 명소화는 최고권력자, 별장의 최적지가 되게 했다.

지역주민에게는 설상가상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고장에 낯설은 성역의 침범이었던 것이다. 수십 년간 그지역의 생활권에 얼마나 큰 장애물로 존재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군사정권시절 최고권력자의 지방행차는 당연히 공직자들의 텐션 1순위였다. 경호실이 옮겨와  수주일 전부터 지역 치안을 통제하며 권력을 행사했다. 나의 군시절 어느 관서에서 겪었던 암울함이 다시금 떠오른다.


후 다행히도 우리 국민들이 쟁취한 민주화의 영향을 여러 분야에서 체감하게 되었다. 이처럼 통치자의 공간적 성역까지 조금씩 허무는 결과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청남대의 개방이 그중 대표적 하나에 포함될 것이다.


경내를 둘러보는 동안 왠지 마음의  무거움을 느꼈다.   5 공권력자의 흔적들이 가장 많이 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권위주의의 암울한 그림자가 밟히는 기분이었다. "훗날 역사가 나를 평가할 것"이라던  그가 생전에 자주 쓰던 발언이 귓가에 맴돌아 내 심경을 착잡하게 만드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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