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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편애하기ᆢ?!

문과 남 자연과학 여행

세상의 패권은 어떤 사상, 철학보다  사이언스의 우위가 더 강력하고 오래 지속됐음을 역사가 확증해  준다ㅡ


자연과학이 새롭게 다가왔다.

최근 듣게 된 사이언스 강연에서 유한한 우리의 생명이 영원한 우주의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인간이 이 땅에서 생을 마치면 우리몸의 원자적 물질이 우주에  남게  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이언스의 강조는 인문학, 철학, 사상, 특히 종교인들에게 불편하게 다가간 것 같다. 특히 "종교가 인간의 생존에 직접적 도움이 되는가"라는 강연에 나선 과학자의 질문이 다소 투박하게

전달된 모양이다.


인간은 인지혁명  오래전부터  유한한 생명의 한계를 너무 의식하며 살아왔다. 따라서  인문학적 철학, 사상, 종교에 치중하는 경향이 심했다.

물론 이들은 인간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고 공동체의 결속과 지속 그리고  무형의 정서함양에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인간은 주변의 사물에 인간적 정서를 투사하는데 익숙해 왔다.

인간이 야생동물을 길들일 때도 의인화 작업이 있었고 자연적 사물에도 마찬가지였다.

 과학적 사실보다

 지형지물등의 형상화나  전설, 설화, 신화 등으로 가득 채웠다.

 

그러나 이러한 정서나 철학, 사상들이  인간의 생리적, 물리적 생존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종교조차도  그것을 믿든, 안 믿든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류는 알게 됐다.


사이언스만이 인간의 활동 중에서 자연의 냉엄한 실체를 가늠해 낼 수 있다.

사이언스를 통해서 자연의 본질과 만날 수 있다. 그것을 통해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바이러스를 격퇴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했다.


인간의 활동은 대부분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이며 이를 잘할 때 지혜롭다고 말한다.

사이언스는 지혜를 탐구하는 인간의 활동이 아니다. 냉엄한 자연 그 자체를 이해하는 활동이다.


여기서 우리가 사이언스에 인간의 정서나  목적의식을 투영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이언스의 의인화이고   그것을 본질이 아닌 인간 속에 구속시키는 행위가 된다.


인간이 종교적 관점이 아닌 우주의 무한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적 의욕, 목적의식을  사이언스에  투영하지 아야 한다.

순수한 인간 그 자체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이 실재로 우리몸의 원자 하나하나가 퍼져나가 사이언스적  우주의 존재가 되는 길이다.


ᆢ반박글 ᆢ전형적인 환원주의적 관점을 가졌다. 그런 관점으로 인문학적 질문에 답을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제발 깊이 있는 인문학을 습득한 후에 떠들어 주길 바란다ᆢ.


ᆢ나의 옹호글ᆢ

천재적 과학자의 자발적 사이언스의 대중화 노력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

철학, 사상, 추상적 현상들의 말장난 같은 범벅된 견해들이 위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겠는가.

혹시 종교인이라면 치료약 없이 covid 바이러스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가.


역사적으로  세상의 패권은 어떤 사상, 철학보다  사이언스의 우위가 더 강력하고 오래 지속됐음을 확증해 준다. 그동안 우리가 당하지 않았는가. 구한말, 서구과학 즉  사이언스를 좀 더 일찍 받아들인 이웃 일본의 국력은 장장 한 세기 동안 동아시아를 쥐락펴락 했다. 특히 우리가 처절하게 당하지 않았나.


인간의 생존문제에 있어서 사이언스적 접근이 환원주의든 무엇이든 훨씬 설득력 있고 이해하기 쉽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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