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한상희 ㅇ자연인한스ㅇ
Dec 17. 2024
ㅡ작금의 계엄령 선포라는 8.0강진,
그리고 8년 전의 최순실사태 회고 ㅡ
21세기 선진한국에 계엄선포란 강진이 발생했다. 온 국민이 놀라고 세계가 놀라 졸지에 대한민국이 여행 위험국으로 추락했다.
정치, 경제, 외교 그리고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무엇이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된 듯하다. 결국은 작금의 계엄선포란 사고를 친 군통수권자의 정신세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정치세계를 전혀 모르는 자질과 역량 결핍의 인물이 최고지도자가 된 탓일 게다.
그가 대권을 잡게 된 시점부터 이 사달이 난 것 같다.
통상적으로 대권을 차지하게 되면 대개 그 후로는 선거전 때의 대립을 떨쳐내고 통합의 정치를 지향하는 법이다. 그러나 현 정권은 첫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대선레이스 때 험악한 분위기의 긴장감을 당선 후 까지도 그대로 유지했다. 그 와중에도 자유민주주의란 레토릭을 남발하고 국민이란 워딩을 자주 사용했다. 그러나 한낱 말뿐이었다. 결국은 정적 죽이기의 편향적 기소남발이 시작되었다. 소위 검찰독제의 시작이다.
야당과의 대화와 타협 이해조정 등 정치테크닉은 실종된 지 오래다. 범죄자 프레임으로 얽어놓은 야당대표와의 대화와 타협은 언감생심이 되었다. 점점 국회는 경색 돼 가고 민생은 뒷전이 되었다. 자유민주주의, 국민이란 말 역시 수사적 표현에 불과했다. 그 와중에도 그들은 권력의 맛에 빠져들었고 배우자와 극우세력 등의 장막에 갇혔다. 마침내 아집과 독선으로 충만되어 안하무인이 되었다.
이쯤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라 생각된다.
결국은 총선에서 정권 심판을 받고 말았다. 확실한 여소야대에서도 최고권력자는 진즉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3김시대처럼 3당 합당은 아닐지라도 거국내각 등 대승적 정치변화를 이끌어 낼 역량도 없었다. 여론조사 수치가 곤두박질 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권놀음과 영부인놀이에 심취한 듯했다.
그는 사적인 연줄에 얽매이고 배우자에게 휘둘려 문제의 인사권을 남발했다.
그의 인사에서 능력이나 관록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충암파와 같은 사적연줄의 좁은 인재풀에서 삼류인재들의 요직포진이 그것이다.
대화불통의 현 정권과 등을 진 거대야당은 다수결로 맞대응할 뿐이다. 예산삭감과 탄핵남발이 이어지니 작금의 이 지경에 이른 것 같다.
하지만 이 시대에 총칼을 동원하는 위헌적 행위를 한다는 발상 자체가 놀랍다. 비상계엄의 빌미를 위해 국지전을 유발하려 했단다. 요인을 체포, 지하벙커에 감금하려고 한 것도 경악할 일이다. 그들의 계책이 순행됐다면 얼마나 무고한 군경, 시민이 피를 흘렸을까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하다.
21세기 선진한국땅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들의 대권놀음이 극치에 달하여 계엄선포권에 까지 이른 것 같다. 이렇게 그 부부의 원 없는 권력놀음은 종지부를 찍고야 말았다. 그러나 국가적 폐해를 감수해야 하는 국민들은 참으로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이번에 계엄선포란 강진을 겪으며
8년 전에 온 나라를 흔들었던 또 하나의 강진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때의 강진이 이 시점에서 다소 온건하게 다가옴은 무슨 까닭일까?
물론 그 당시에도 우리의 마음이 심란하 긴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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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사태라는 8.0의 강진이 온 나라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동안 제왕적 최고권력자와 그 주변에서 기생해 온 자들의 민낯이 여실이 드러난 시간이 되었다. 또한 현사회에서 가진 자들의 부도덕과 불법적 행태의 치부를 여실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부모의 후광을 업고 또는 자신을 앞세워 권력을 잡기 위한 정치세력에 떠밀려 대통령이 된 무능한 그녀였다. 그 무능으로 인하여 법치국가의 ABC도 모른 채 국민이 부여한 신성한 대의 민주주의 권력을 사적인 인연의 천박한 아녀자에게 던져주었다. 그리고 비선실세의 조종을 받으며 이 나라를 통치하여 왔으니 나라의 꼴이 만신창이가 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공사를 구별 못해도 이 정도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곳의 법적 공조직에는 이 나라 최고엘리트들이 일천명이나 모여있는데도 그들과는 거의 소통하지 않았다. 반면에 최순실이 거느리고 있는 시정잡배 비선라인의 코치를 받으며 국정을 움직였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또한 최순실의 권력놀음은 가관이었다. 자신의 일상사에 관계되는 모든 부면에서 최고권력자의 권위로 갑질을 하고 국가예산을 몰아주었다. 또한 정부부처 사업들의 잇권과 인사에 손을 대었으니 참으로 그 끝을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이 사태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은 많은 관련공직자들의 거짓된 위선적 언행과 재벌들의 권력에 대한 유착관계다. 그리고 가진 자들 그들만의 잇권유지를 위한 견고한 시스템형성을 읽어낼 수가 있었다. 우리는 이 사태를 통하여 많은 것을 잃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 사회시스템 변환의 계기로 삶을 수 도 있을것이다.
전 국민 대다수의 의식을 깨우는 작금의 이슈들이 이제는 진정한 시민사회로 갈 수 있도록 이정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백만이 넘는 촛불인파는 이 사회의 공정성과 진실성 그리고 원칙이 지켜지는 신뢰사회를 요구하고 있다.
물론 이 사회가 광복 후부터 부정한 세력들에 의해서 뒤틀려져 왔지만 현 사회는 많은 것이 열린사회로 갈 수 있는 정보의 네트워크가 되어있는 IT시대가 아닌가. 우리는 이제 진실성 있는 대의 민주주의에 충실한 지도자를 원한다. 틀에 박히고 그들만의 권력유지에 익숙한 정치꾼들에게 이제 설 땅을 내주어서는 안 된다.
유럽 등 선진소국들이 오래전에 부유한 사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지도자와 깨어있는 시민정신이 있었다. 우리 사회도 경제의 파이는 커져있는 상태다. 운용만 잘한다면 많은 예산과 자원을 아낄 수 있다. 지도자의 의지만 있으면 일 년 예산의 10%를 아낄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어림잡아도 40조에 이르는 액수다. 그 돈이면 우리의 모든 자녀들, 전과정 교육을 무상으로 할 수 있고 서민의료비를 완전무료화 할 수 있는 액수다.
따라서 토건비리가 기생하는 불합리한 대형 국책사업들이 예산낭비의 주범이다. 또한 대기업에 편중된 거액예산 정책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그렇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 사회가 태생적으로 권력과 재벌의 공생관계에서 커왔기 때문이 아닌가.
이제는 시민의 힘으로 그들만의 공생관계를 타파해야 한다. 그러한 시도가 배경과 상황은 다르지만 미국에서 일어났다. 막말등으로 말썽은 많았지만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은 시사하는 점이 크다.
그동안 정치가문이나 대기업들의 후원을 받는 정치세력이 대대로 권력을 잡았으나 이번에는 전혀 정치 기반이 없는 트럼프가 미국중류서민들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다.
평등보다 기회균등을 더 높은 가치로 여기는 미국 사회는 한국과는 출발점부터 다르긴 하다.
하지만 작금의 이 사회도 이제는 뻔뻔하고 두 얼굴을 한 기득권 세력이 정권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