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두 교황>을 통해 바라본 외로움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외롭다. 그 존재론적 외로움은 ‘배꼽’을 통해 우리의 신체에 각인되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다. 자궁 속 태아에게 어머니의 자궁은 최초의 우주이며 세계이다. 하지만 출산을 통해 다른 세계로 나오는 순간, 가장 가까운 존재인 어머니와의 연결인 탯줄은 잘려야만 한다.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안락한 세계에서 차가운 현실 세계로 던져진 아기는, 어머니라는 존재가 비로소 내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잘려버린 탯줄의 흔적으로 배꼽이 생긴다. 배꼽은 최초의 우주이자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였던 어머니로부터 단절된 흔적이다. 외로움은 “홀로 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배꼽은 인간이 처음으로 느낀 외로움에 대한 각인이다.
배꼽은 그리스어로 ‘옴파로스’(ὀμφαλός)이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는 세계의 중심을 찾기 위해 독수리 두 마리를 세계의 양 끝으로 날려 보냈고, 그 두 마리가 만난 곳이 델포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델포이를 세계의 배꼽, 즉 세계의 중심으로 여겼다. 델포이는 신탁을 받는 장소라는 점에서,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옴파로스는 세계의 중심이자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장소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바티칸은 가톨릭교회의 옴파로스이다. 가톨릭교회의 중심이며,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 사도에게 맡겼고, 베드로 사도의 사도좌는 오늘날까지 바티칸에서 계승된다. ‘사도좌’는 바티칸이라는 옴파로스에서도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좌의 265대 계승자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지난 4월 21일 영면에 든 266대 교황 프란치스코의 만남을 다룬 영화가 〈두 교황〉이다.
영화에서 베네딕토 교황은 고립되어 있다. 교회 내적으로 여러 문제가 발생했고, 베네딕토 교황은 교회 외부는 물론이고, 교회 내부에서도 심각한 비난을 받고 있었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그를 두고 ‘나치’라고까지 비판했다. 성경에서 카인의 제물을 하느님이 받지 않으셨다는 장면을 상기시키면서, 그는 말한다.
“어느 날 밤에...기도 후에 초를 껐는데 연기가 위로 올라가지 않고 아래로 내려가더군요. 주님께서 카인의 제물을 거절했을 때처럼 말이오.”
그의 추기경 시절 문장에는 “진리의 협력자”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오랫동안 신앙교리성 장관직을 수행했던, 진리의 협력자인 교황이 자신을 카인에 비유하는 모습은, 그의 지독한 고립감을 전해준다. 하느님마저 자신을 버린 것 같다는 교황의 고백은 사제 독신을 지키는 가톨릭교회의 성직자에게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외로움보다 한 차원 더 깊은 외로움을 표현한다.
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늘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베네딕토 교황이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것과 반대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유대하며 하느님의 뜻을 찾았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은 늘 움직이신다고 말한다.
“자연에 멈춰 있는 건 없습니다. 심지어 주님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외로움을 모를 것 같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도 외로움은 있다. 영화 후반 두 교황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그려진 시스티나 경당에서 고해성사를 한다. 교황선출이 이뤄지는 경당이라는 점에서 두 교황의 고해 장면은 정말 중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젊은 시절 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에 맞서기보다, 독재 정부와 관계를 유지하면서 어떻게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분투했다. 하지만 강경한 노선으로 독재 정부와 대립했던 사제들을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항상 그를 괴롭혔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채 살아온 시간은 그에게 지독한 외로움으로 남아 있었다.
두 교황은 서로 다른 양상의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베네딕토 교황은 하느님으로부터 마저 외면당한 ‘고립으로부터 오는 외로움’을 느낀다. 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군중 속에서도 자신을 뿌리 깊게 용서하지 않고 미워하는 이가 있다는 ‘군중 속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영화에서 베네딕토 교황은 고해성사를 한 이후 군중들 틈으로 들어가 함께 웃고 사진을 찍는다. 이후 베네딕토 교황은 사임하고 새 교황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후, 두 교황은 다시 만나 아르헨티나와 독일의 축구 경기를 함께 본다. 축구를 보는 교황들 뒤로 촛불의 연기가 하늘로 오르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보수와 진보를 상징하는 두 교황이 서로의 신학적 견해가 다름에도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결핍 때문이었다. 베네딕토 교황은 말한다.
“교황으로서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은 신이 아니라 한낱 인간이라는 것을.”
인간이기에 외롭다. 하지만 그 결핍이 서로의 결핍을 채워줄 가능성을 열어준다. 두 교황은 서로 다른 외로움을 느끼고 있지만, 그 외로움이 서로를 깊게 이해하는 자리가 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유명한 라틴어 격언이 있다. “Felix culpa”, 즉 ‘복된 탓’이라는 역설적 표현이다. 이 문구는 아담의 죄로 인해 그리스도의 구원이 있을 수 있었다는 구원의 신비를 표현한다.
두 교황은 서로의 결핍을 통해 외로움과 고립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발견한다. 여전히 결핍과 외로움은 남아 있다. 그들은 여전히 배꼽이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이 결핍된 인간이기 때문에, 교황 좌를 스스로 내려놓고(베네딕토), 또 그 교황 좌를 받아들일 수(프란치스코)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서, 교황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598년 만에 스스로 교황직을 내려놓는 결정을 하기까지, 베네딕토 교황이 얼마나 외로웠을지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얼마 전 돌아가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자한 미소 뒤로 무겁게 자리하고 있을 외로움도 느껴졌다.
하지만 베네딕토 교황의 용기와 또 그 교황 좌를 이어받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용기는, 스스로 자신을 거룩하거나 성스럽게 여기는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약하고 모자란 것으로 치부되는 ‘외로움’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따뜻하게 느껴졌다.
영면에 드신 두 교황이 천국에서 만나시리라 믿는다. ‘진리의 협력자’로 또 ‘하느님의 자비’를 믿고 살아오셨던, 너무나도 사랑했던 두 교황을 보내드리며, 두 교황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