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귀멸의 칼날>이 말하는 상처의 의미
늦은 나이에 새롭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눈치 보기다.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았지만, 마음 놓고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첫인상이나 목소리로 무엇이든 잘 알려줄 것 같은 사람을 찾았다. 대부분은 귀찮은 티를 내면서 알려주었고, 몇몇은 아주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하지만 드물게 차갑고 냉정한 사람을 만나면 모르는 게 죄라고 자신을 질책하기도 했다.
〈귀멸의 칼날〉은 혈귀와 싸우는 검사들의 조직인 귀살대에 관한 만화이다. 이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 들은 저마다 상처를 갖고 있다. 토미오카 기유는 누나와 친구가 모두 자신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었다. 기유는 이 경험 때문에 자신을 혐오하게 된다. 누나와 친구가 죽어가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는 무력함이 자기혐오로 나타난다. 카마도 탄지로와의 첫 만남에서 혈귀로 변해가는 동생을 살려달라는 탄지로의 애원에 기유는 분노하며 소리친다.
“생사여탈권을 타인이 쥐게 놔두지 마라! 빼앗느냐 빼앗기느냐 하는 때에. 주도권도 쥐지 못하는 약해빠진 놈이 여동생을 낫게 하겠다고? 약자에게는 아무런 권리도 선택지도 없다. 철저하게 힘으로 강자에게 짓밟혀 굴복당할 뿐.”
기유의 냉소적인 반응은 회사에서 모르는 것이 있어서 질문을 했을 때, 돌아왔던 대답과 비슷하다.
“지침은 찾아보셨어요?”
렌고쿠 쿄주로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며, 따뜻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던 동료를 떠올리게 한다. 쿄주로는 아버지의 온갖 냉소와 무시를 겪으면서 자랐다. 하지만 그런 가혹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쿄주로의 곁에는 따뜻한 어머니가 있었다. 쿄주로의 어머니는 쿄주로에게 말한다.
“나면서부터 남들보다도 많은 재능의 은혜를 지닌 사람은 그 힘을 세상을 위해 써야만 한답니다. 하늘께서 베풀어주신 힘으로 남들을 상처 입히는 일,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답니다. 약한 이들은 돕는 것은 강하게 태어난 자의 책무입니다.”
쿄주로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지만, 어머니의 가르침은 쿄주로의 마음속에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아카자는 아주 강력한 혈귀 중 하나로, 쿄주로와 목숨을 걸고 싸우는 혈귀이다. 아카자는 쿄주로와의 전투에서 쿄주로에게 계속해서 혈귀가 되라고 권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잃은 아카자에게 세상은 분노와 혐오의 대상이었고, 아카자는 그 분노와 혐오로 인해 혈귀가 된다. 아카자는 쿄주로에게 말한다.
“너도 혈귀가 되지 않겠나?”
직장에도 아카자와 같은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빅터 프랭클(Viktor Emil Frankl. 1905-1997)은 자신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 나치 강제수용소에서의 경험을 전한다. 그는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을 견디면서 고통에 대해 깊이 있게 통찰했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사람이 신경증이나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받을 때 중요한 건 과거의 상처가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미래의 희망과 의미다. 삶의 의미를 찾으면 인간은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는 상처에서 의미를 발견한다면, 그것이 더는 상처가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상처에서 발견된 의미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되고, 삶을 살아갈 이유가 된다.
〈귀멸의 칼날〉의 주인공인 탄지로는 이마에 상처가 있다. 이 상처는 뜨거운 화로가 쓰러질 때 동생들을 구하기 위해 머리로 화로를 막다가 생긴 상처이다. 만화의 후반부에 탄지로의 이마에 난 상처는 신체 능력을 극대화하는 반점(강함의 표시)으로 변화한다. 이 장면은 〈귀멸의 칼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함축하고 있다. 만화는 상처가 의미가 되다면, 그 의미는 다른 사람을 돕고 구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아카자와 쿄주로의 목숨을 건 혈투 장면에서 쿄주로는 아카자에 맞서 중상을 입고 싸우다 죽어가면서 외친다.
“난 나의 책무를 완수한다. 마음을 불태워라, 한계를 뛰어넘어라!”
쿄주로가 죽음을 통해 전달한 마음은, 이제 다른 검사들의 마음에 불씨가 된다. 육신의 영원을 꿈꾸는 혈귀와는 반대로, 쿄주로의 마음은 다른 검사들에게 전해지고, 그들의 마음 안에 의지가 되어 영원히 산다.
〈귀멸의 칼날〉에 등장하는 혈귀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로 혈귀는 과거에 인간이었던 시절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다. 이 상처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혈귀는 세상에 대한 증오와 힘에 대한 욕망을 갖게 된다. 두 번째로 혈귀는 사람을 잡아먹음으로써 강해진다. 즉 사람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며, 계속해서 사람을 잡아먹으려 한다. 세 번째로 혈귀의 신체는 손상되어도 회복된다. 이 신체의 회복이라는 특성은 자신의 신체마저 도구화하고 수단으로 사용하는 혈귀의 잔인함을 보여준다.
이 세 가지 특성을 다 갖춘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혈귀이다. 쿄주로처럼 상처를 타인을 구하기 위한 마음으로 승화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기유처럼 냉소적인 태도로 자신을 방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상처가 힘에 대한 갈망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회사에서는 승진에 대한 지나친 갈망이나 권력욕이 그것과 같다. 이런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을 승진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종종 자신마저 도구화하는 경향을 지니기도 한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아름다움’과 ‘앓음 다움’은 비슷하게 발음된다. 상처에서 의미를 발견한다면 고통은 아름다운 것이 된다. 하지만 상처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한다면, 상처는 영원히 상처로 남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상처들은 스스로를 잠식해 괴물이 되도록 한다.
누군가를 참 많이도 미워해 본 적이 있다. 정말로 죽도록 미워서 생각만 하면 화가 나던 밤들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서 그 감정들이 옅어지고 자연스럽게 미운 마음도 사라졌지만, 그때의 상처에서 여전히 나는 아무런 의미도 발견하지 못했다. 망각도 그만큼의 시간을 감내했기에 주어진 ‘앓음 다움’이다.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의미를 발견하지 못해도 좋으니 잘 견디자고 말해주고 싶다. 그것이 못난 내가 건넬 수 있는 상처에 대한 조언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귀멸의 칼날〉의 쿄주로를 닮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