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는 과연 자유를 주는 약일까?

영화 <매트릭스>에서의 선택

by 공중부양

퇴사 해버릴까?

상사에게 무시당했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뺨을 맞은 것처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퇴사하고 싶다.” 이 지긋지긋한 회사를 벗어나야만 내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다가 다시 이성의 끈을 부여잡는다. “뭐 먹고살 거야?" 회사에서 나는 자유의지를 완전히 박탈당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퇴사는 자유를 주는 약처럼 보인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건네준 빨간 알약처럼.


빨간 알약, 그리고 주체적 선택

영화 <매트릭스>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기계가 지배하고 있는 미래에, 인간은 기계를 작동시키기 위한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인간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기계에 의해 재배된다. 그리고 그렇게 재배되는 인간의 정신을 가두기 위한 시스템이 매트릭스다. 매트릭스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던 앤더슨(네오)에게 어느 날 진짜 인간들의 세상인 시온의 반란군 리더인 모피어스가 찾아와 알약 두 개를 내민다. 빨간 알약은 인간들의 세상인 시온으로 갈 수 있는 약이고, 파란 알약은 다시 매트릭스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약이다.


네오는 빨간 알약을 선택한다. 진짜 현실 세계로 가게 된 네오는 모피어스 일행으로부터 뇌에 무술 데이터를 업로드 받는다. 네오는 점점 성장해서 매트릭스 시스템 전체를 파악하게 된다. 매트릭스를 이해한 네오는 적들의 총알을 멈춰 세우고, 하늘을 날아다닌다.



자유의지는 거짓말일까?

하지만 네오는 매트릭스의 창시자 아키텍트를 만남으로써 자신의 선택이 매트릭스의 통제 아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네오는 그에게서 자신이 6번째로 만들어진 매트릭스의 우발적 변종일뿐이며, 자신의 모든 행동과 선택은 예상 가능한 것들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네오의 얼굴 뒤로 보이는 수많은 모니터에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반응하는 네오의 얼굴은 매트릭스 시스템이 모든 선택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내 선택이 되기까지

이런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과연 우리가 하는 선택이 의미가 있을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모든 선택이 사실은 구조의 통제 아래 있고, 그런 관점에서 구조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주체적 선택이란 없다. 그래서 우리의 선택은 무의미하고 허무해 보인다. 마치 네오와 스미스의 마지막 전투 장면에서 스미스가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스미스가 쓰러진 네오에게 말한다 “이유가 뭐야? 왜 포기하지 않지? 왜 계속 싸우냐고? 자신까지 희생하며 뭘 지키겠다는 거야? 그게 뭔진 알고 있나? 자유, 진실, 평화 혹은 사랑? 다 환상이고 망상이야. 의미 없는 자신의 존재를 합리화시키려는. 나약한 몸부림이지 모두 조작된 거야 매트릭스처럼 대체 왜 포기하지 않는 거지?” 네오가 답한다.


“내가 선택했기 때문이야.”


스미스의 “이유가 뭐야?”라는 질문은 오라클이 네오에게 했던 말과 연결된다.


“너는 이미 선택을 했어, 선택을 한 이유를 알아야 해.


네오는 이유를 찾았다. “내가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말은 자신의 선택이 스미스의 말처럼 환상이나 망상으로 보일지라도, 목숨을 걸고 그것을 자신의 선택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네오는 시스템에 의해 통제된 선택을, 진정으로 주체적인 선택으로 변화시키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네오가 찾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이유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통해 네오의 선택은 진정한 ‘내 선택’이 된다.



나의 퇴사 경험

사실 나는 퇴사의 경험이 있다. 20대 청춘을 모두 바쳤던 첫 번째 직장을 퇴사해야겠다는 결정을 하기까지 매일 같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솔직히 퇴사가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30대 중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아무런 경력도 없이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압박감은 나를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게 했다.


퇴사를 하고 백수가 된 나는 취업과 시험 준비를 하면서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고, 마침내 30대 후반에 새로운 직장을 얻을 수 있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수히 나 자신을 질책했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극단적인 생각을 수없이 했고, 우울감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 “내가 최초에 했던 퇴사라는 선택을 옳은 것으로 돌려놓겠다.”라는 의지를 잃지 않았다.


여기서 멈추면, 내가 했던 선택이 틀린 선택으로 영원히 남게 되는 것이었고, 내가 청춘을 바쳤던 선택이 고귀했던 것처럼, 그것을 그만두는 선택도 여전히 가치 있는 선택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된 지금은 그 모든 선택과 순간이 옳은 것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한 번 더 그 과정을 이겨낼 자신은 없다.


나는 그때 <매트릭스>를 볼 여유도 없었고, 내 선택에 대해 깊게 다시 생각해볼 여유 또한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네오가 스미스와 싸우면서 말했던 “내가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과거의 나 자신에게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때 무너지지 않고 그 마음을 지켜준 과거의 나에게 감사를 전한다.



선택을 지키는 용기

하나의 선택은 연쇄적으로 다른 선택을 유발한다. 한 번의 선택은 쉽지만, 이어지는 연쇄적인 선택에서 또다시 최초의 선택을 지키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초의 선택을 끌어안고 이유를 붙잡는 순간, 비로소 그 선택은 나의 것이 된다.


“너는 이미 선택을 했어, 선택을 한 이유를 알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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