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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Feb 18. 2022

안경

"나는 화면으로 책을 보지 않는다. 태블릿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글자를 보는 일은 내게 책을 읽는 일이라기보다는 눈을 태우는 일에 가깝다. 빛을 반사하고 흡수한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고 빛 자체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아무래도 꺼림직하다. 터치스크린으로 보는 글자들은 종이책으로 읽는 글자들보다 눈 속으로 깊이 파고든다. 집중해서 스크린을 들여다보고 난 뒤에는 시신경을 무언가로 꼭 졸라맨 것처럼 눈 속이 뜨겁고 뻑뻑해 잠을 설치곤 한다."


- 황정은 작가의 '일기' 중에서


사무실 앉은 자리의 뒷 조명이 키보드와 결합된 아이패드의 화면각과 절묘하게 반사되어 내 눈엔 아이패드 화면과 수 많은 백색 발광체가 같이 보인다. 사무실 조도를 높이기 위해 기존 등 외에 30여개의 백색등이 아래로 떨어지도록 추가했는데 눈이 무척 시리다. 


평소 시력이 나쁜 편은 아니다. 다만 몇시간이고 오랫동안 눈을 사용하면 피로감과 동시에 난시 현상을 접하게 된다. 안과엔 가보진 않았지만, '피로성 난시'라 스스로 명하고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보니 지식인에 그러한 질문이 있다. 물론 그 일반인 역시 나처럼 자신만의 언어로 명명한 것이었다. 안경을 사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피로성 난시가 나타나지 않은 상황이면 그 난시 발생 때의 시력 측정이 불가하니 안경을 못맞추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엔 멋으로 도수도 없는 안경을 끼기도 했다. 몸에 걸리적 거리는 걸 세상 싫어하는 내가 오래 낄리가 없다. 그저 수업시간이나 도서관에서 몇 번 끼다가는 쳐박아둔 안경이 몇개가 몰려있다. 난 어쩌면 또 그럴듯한 타당성을 요구하고 나선 것일지도 모른다. 안경을 낀다는 행위가 집중으로 연결되는 루틴을 만들면 내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스스로 논리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사실 궁극적으로는 내 핑계로 어머니의 안경을 맞추는 게 가장 큰 일이다. 몇년전 어머니의 안경은 오래 쓰겠다는 일념으로 일부러 더 높은 돋보기 안경을 구매하시고, 쓰면 어지럽다면서 새로 구매하지는 않는 어머니의 똥고집을 이번에야 꺾었기 때문이다. 몇년 살더라도 보는 건 제대로 보자라고 윽박지르고 못내 알았다고 하셨다. 자나깨나 아들 돈 걱정이신데, 이런 곳에 돈을 안쓰려면 난 왜 돈을 버는건지 모르시는 듯 하다. 아니, 아시면서도 그래도 내 한 몸 더 챙기시길 바라는 마음이시겠지. 


이혼 후 홀어머니로 지내오신 당신의 죽음 앞에 후회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다. 자잘한 핑계와 합리화로 이 결심히 나약해지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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