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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Mar 26. 2018

비가 오는 날

비. 비가 오는 날이다.


공기 중 수증기들이 하나에 하나를 더하고 거기에 다시 하나를 더한다. 공기보다 가볍던 이들은 어느새 물방울이 되어 드높은 하늘에서 지면으로 자유낙하한다. 떨어지는 그 순간은 중력의 영향 외에는 '자유' 그 자체로 존재한다.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여 이 잔망스러운 낙하를 조금 더 집착하기로 한다. 앞마당 목련 꽃망울에게 일어나라고 깨우더니, 이윽고 동백 나뭇잎에서 미끄럼틀을 몇 번이나 탄다. 묵직한 기와에 가볍게 투닥이며 스미고, 다시 처마 끝에 토닥이며 떨어지는 빗소리가 가장 매력적이다. 


아버지는 어머니 몰래 검은 비닐 봉지에 소주를 사오셨다. 어머니는 못이긴 척 김치전을 구우신다. 잘게 썬 김치가 어머니 손에 한웅큼 쥐어지고 아들이 뚫어져라 응시하는 후라이팬 위에 봉긋 자리잡는다. 빗소리마냥 쏴아하고 요란을 떤다. 뒤집개가 봉긋한 반죽을 살살 눌러가며 반죽은 어느새 후라이팬 전체 넓게 펴진다. 불기운이 자글거리며 겉은 바삭해지고 안은 한껏 따뜻해졌다. 주황색의 김치전이 채도가 진해졌다 싶으면, 모두의 젓가락이 기다리는 접시 위로 올려진다. 어머니는 젓가락으로 먹기 좋은 크기로 찢어주고, 아버지는 황급히 소주 한 잔을 넘기신다. 아들녀석들의 젓가락질은 분주하기 짝이 없고 어머니는 재빨리 다음 반죽을 봉긋 올린다. 후라이팬의 자잘한 소리처럼 비도 좀처럼 그칠 기색은 없다. 한 입도 드시지 않은 어머니는 먼산으로 미소를 던진다. 저 먼 산자락에 소나무가 참 푸르다.


"좋네."

"응. 참 좋네."


어머니의 혼잣말에 아버지가 화답한다. 그리고 낼름 다음 잔을 비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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