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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Jun 13. 2022

완벽보단 완결

아들아, 6월인데 벌써 여름이 온듯한 날씨다. 과거에 비해 여름은 점점 더 빨리 오고 있다. 그렇다고 여름이 일찍 끝나는 건 아니고, 봄과 가을이 더 짧아지고 있다. 환경 파괴로 인한 기후 이상의 현상이다. 각종 작물이나 과일의 재배 한계선은 날이 갈수록 북상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환경 이슈는 네가 살아갈 날들에 대한 걱정이었다가, 차츰 이젠 내가 사는 생에도 영향을 미칠만큼 빨라지고 있다. 작게나마 기여하려고 노력한다. 종이컵은 안쓴지 몇년이나 되었고 텀블러를 가지고 다닌다. 휴지도 덜 쓰려고 손수건을 휴대하고 다닌다. 나 하나가 해서 지구에 큰 영향이 있겠냐만은 나부터라는 인식은 적어도 내 생각보다는 크게 기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어릴 적 먹었던 하드 중에 ‘수박바’라는 것이 있다. 어릴 적 개념으로는 나무 스틱이 달린 단단한 빙과류를 하드라고 불렀고, 소프트아이스크림류를 그냥 아이스크림이라고 나눠불렀다. 우연히 간 마트에는 수박바가 있어서 샀다. 내 추억을 너와 공유하고 싶은 까닭이다. 부모가 가지는 작은 기대같은 거다. 내가 어릴 때 즐거웠던 추억에 대한 회상과 그 즐거움이 나의 아들도 느끼길 바란다. 그럼 우린 같은 물질에 시간적 초월을 더해서 행복해지는 것이니까. 수박바는 수박 모양의 삼각 하드이다. 수박의 붉은 부분은 딸기맛을 내고 있으며 나무 스틱에는 2센티미터 정도의 녹색 영역이 있다. 디테일을 뽐내기 위해 붉은 부분에는 초콜릿이 수박씨처럼 랜덤하게 박혀있다. 당시 또래의 대부분 친구들은 녹색 부분을 더 좋아했던 걸로 기억한다. 어쨌든 수박도 좋아하는 네 녀석은 대뜸 집어들었는데 얼마 먹지 않더니 날 불렀다. 수박에 씨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넌 나를 부르는 순간의 대부분이 해달라는 요청이다. 자다가 간지러운 곳이 있으면 넌 아빠를 불러서 긁어달라고 했다. 성장통인지 모르겠지만 새벽에 가끔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기도 한다. 옷을 입는 것도 네 엄마가 보지 않으면 넌 내게 옷을 입혀달라고 한다.


이제 9살인데 현이도 스스로 해야지.”

아니! 아빠가~! 왜 그런지 알아?”

왜?”

난 게으름뱅이니까!”


자지러지게 웃고는 넌 뭔가 통쾌해한다. 네 웃음에 나도 무장해제된다. 사랑한다, 우리 아들


수박씨를 내게 보여준다. 먹어도 된다고 내가 이야기를 했다. 넌 뭘로 만들어졌는지 물었고 난 초콜릿으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넌 네가 초콜릿을 싫어하므로 씨를 빼고 먹어야 겠다고 했다. 얼어붙은 빙과류에서 그 작은 초콜릿을 빼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정교한 작업을 더 유용하게 하기 위해 쇠젓가락을 줬지만, 결국 이내 지치고 말았다.


아빠, 다른 거 먹을래”


덕분에 크게 웃었다. 그리고 이번엔 상어 모양의 죠스바를 줬다. 이는 예전에 네가 먹어봤던 맛이라서 맛있게 먹더라. 네 성향에서 엄마가 나오기도 하고 내가 나오기도 하는 모습이 참 신기하고 새롭단다. 9살인 넌 아직도 밥은 떠먹여줘야 먹으며, 직접 먹으라하면 섭취량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아마도 이 게으름은 네 엄마한테 온 것 같다. 아빠가 들은 네 엄마의 가장 충격적인 에피소드는 초등학교 시절 코를 풀기 귀찮아서 그냥 코를 담고 다녔다는 이야기였다.


네가 서너살일땐 친할머니는 아빠가 널 너무 안아줘서 그러지 말라고 만류하고 하셨다. 첫째는 내가 힘들까이고 둘째는 네가 버릇들까봐이다. 난 개의치않았다. 물론 널 안고 있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가 안고 싶어도 널 안을 수 있는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그 예상은 옳았다. 아홉살의 넌 걷기 힘들어 다리가 아픈 상황이 아니면 내게 잘 안기려고 하지 않는다. 입맞추는 건 질색팔색을 한다. 이 부분은 좀 억울한 면이 있다. 난 예민한 성격탓에 오래전부터 위장병을 자주 앓았고, 체내의 헬리코박터균 등은 접촉으로 옮길 수 있다는 걸 잘 알기에 내 입맞춤은 상당히 자제하다 더이상 어려울 경우에 시도했다. 애석하게도 네 할머니도 사정은 비슷해서 수저도 따로 분리해서 썼다.


내일은 비가 오겠구나. 넌 방금 선생님이 왜 만화책을 보지 못하게 하냐고 했다. 대다수의 만화책은 학습과는 거리감이 있는 것이니 공부하라는 의도에서 만화를 멀리하라는게 선생님의 지시였을게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만화로 시작해서 히트하는 드라마는 상당히 많으며 마블을 비롯한 몇몇의 만화는 천문학적 수익을 올리는 중요한 지식재산권의 일부이다. 선생님의 지시는 잘못되었다라고 생각되지만, 2학년부터 네게 반항을 가르치고 싶진 않다.


사랑한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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