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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Jun 17. 2022

너의 아침

물 한 컵을 마시고 곧장 부엌으로 향한다. 손잡이가 긴 냄비에 누룽지를 넣고 물을 1/3 부어 가스렌지 불을 켠다. 대략 8분 정도 끓이면 된다. 그동안 지난 밤에 돌려놓은 식기 세척기의 그릇을 차근차근 정리한다. 물기가 빠진 수저와 식기를 하나씩 정리한다. 난 나무로 된 수저를 좋아하고 네 엄마는 플라스틱 용기를 좋아해 꼭 따로 씻을 거리가 생긴다. 너의 아침을 담을 나무 쟁반을 꺼내고 네 수저를 올려놓는다. 보온병에 미지근한 물을 절반만 담아 거실로 나온다. 반만 채우는 이유는 네가 무거울까봐 하는 걱정 때문이다. 네 가방에 물병을 넣고 필통을 확인한다. 잃어버린 연필이 있으면 새로 채워주고 뭉툭한 연필은 기차 모양의 연필깎이에 덜그럭대며 깎는다. 자동 연필깎이 기계가 있지만 흑심을 균일하게 깎아주는 건 이 수동 기차 연필깎이가 탁월하다. 넌 새로 뜯은 마스크의 냄새를 싫어했단다. 지난 밤 잠들기 전 걸어둔 마스크를 천으로 된 연결줄에 연결해서 가방과 함께 놓아둔다. 그래야 매일 아침 널 등교해주시는 할머니가 깜빡하는 일이 없단다. 스마트폰으로 날씨 체크. 네 옷과 우산 등을 미리 알아둔다. 덜 갠 빨래감이 있으면 느리게 개어본다. 아차차, TV 앞에 오늘 네가 먹을 영양제도 가져다 둔다.


누룽지가 끓고 있으니 전기포트에 500ml까지 물을 채우고 전원을 켠다. 누룽지는 큰 그릇에 담아둔다. 우리가 애용하는 누룽지는 딱딱한 감이 있어 이렇게 좀 끓여줘야 먹기 좋은데, 아침에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일려면 적정하게 식혀야 한다. 누룽지를 끓였던 냄비에 집게 손가락만한 소세지를 두 개 넣는다. 내가 먹을 식빵을 토스트기에 꽂아두면 대개 물은 다 끓는다. 끓인 물은 소세지가 담긴 냄비에 붓는다. 후라이팬에 그냥 구울수도 있지만 이러면 기름기를 제거하여 더 담백하게 먹을 수 있다. 네 녀석이 좋아하기도 하고. 소세지가 익을 동안 안방의 커튼을 걷는다. 난 네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주며, 종아리를 조물조물 주물러준다. 9살인 넌 영감님처럼 안마를 좋아한다. 물론 넌 쉽게 잠을 떨치진 못한다. 휴일이 아닌 이상 네가 스스로 일어날 확률은 희박하다.(주말에 넌 6시반에서 7시에 일어나곤 한다.) 보통은 네가 좋아하는 판다 인형을 쥐어주고 널 안아서 거실로 옮긴다. 물컵을 입에 대어주면 참새가 물을 마시듯 한 모금 목을 축인다. 온도 변화에 민감한 널 위해 얇은 이불을 몸에 덮히고 양말을 신겨준다. 


"아빠가 아침 가져다 줄께."

"아빠폰~"


부스스한 눈을 비비고 넌 손을 뻗어 폰을 쥐어달라고 한다. 이제야 밝히지만 눈뜨고 등교하기까지 넌 아주 게으른 나무늘보같다. 난 4~5살 때 삼촌에게 빵과 우유를 냉장고에서 꺼내 먹도록 챙겨주곤 했다. 즉, 네 게으름은 네 엄마로부터 파생된 게 분명하다. 이마 귀퉁이에 입을 맞추고 네게 아이폰을 쥐어준다. 난 위장이 좋지 않은데 너랑 입을 맞추다 헬리코박터균과 같은 나쁜 균이 들어갈지 몰라 너랑 직접 입은 맞추지 않는다. 이는 할머니가 네게 입을 맞추지 않는 것과 같다. 보통의 구내염도 성인과의 입맞춤에서 세균이 침입해서 생기곤 한단다.


소세지를 잘게 자른다. 게임에 빠진 넌 잘 씹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 소세지가 들어가면 넌 오물오물 씹곤해서 할머니가 고안한 방법이다. 누룽지 한 숟가락을 정박으로 넣고, 그 사이에 잘게 자른 소세지를 하나씩 네 입에 넣어준다. 누룽지의 온도를 확인한다. 많이 뜨거우면 정수된 물을 조금 부어 온도를 낮추기도 하고, 급할 땐 얼음을 한 두개 넣기도 한다. 토스트기의 식빵을 빼고 필라델피아 치즈를 얇게 펴 바르고 그 위에 딸기잼을 바른다. 내가 아침으로 챙겨먹는 건 일정 기간을 두고 늘 변한단다. 불과 지난 달만 하더라도 바나나와 블루베리를 우유에 갈아먹었고, 그 전엔 샐러드를 먹었다. 조심스럽게 쟁반을 내리고 누룽지는 한 숟갈 떠놓고 소세지부터 한 입 먹인다. 9살인 넌 아직도 스스로 수저를 사용하길 꺼린다. 오물 거리는 네 입을 보면서 늘 속으론 '귀염둥이~'라고 웃곤 한다. 네가 씹는 동안 누룽지는 따로 숟가락 위에 올려서 바람으로 식혀둔다. 


7시반쯤이면 할머니가 도착하신다. 문에 들어서면 오늘은 피곤하신지, 아픈 곳은 없으신지 표정을 살핀다. 할머니는 자신이 아픈 것을 나이가 들면 생기는 당연한 현상으로 치부하신다. 아마 내가 걱정하는게 싫으신 것이고, 친절하게 대답하는게 귀찮기도 한 까닭일 것이다. 할머니의 컨디션은 대개 아침이 최상이다. 뒹굴거리는 손주에게 손수 한입한입 먹이시면서 나와 한담을 나누는 걸 즐기신다. 내 출근시간이 그리 넉넉한 건 아니지만, 할머니가 가장 활력있게 말씀하시는 시간은 더 드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설령 집을 나서자마자 과속을 감행하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네가 느릿하게 먹는 동안 난 아침을 서둘러 먹고, 손수건을 따뜻한 물에 적신 후 물기를 꽉 짜서 할머니에게 드린다. 할머니는 '어이구, 잘생겼다'를 연신 반복하며 네 얼굴을 닦아주신다. 이게 너의 세수다. 널 다그쳐서 양치질이나 세수를 시킬 수도 있지만 깡마른 네 체형이 늘 안타까운 할머니의 마음은 그렇지 않으시다.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는 게 이득이라는 생각을 하신거다.


성인이 되거나 나중에 나이가 많이 들면 이러한 일상이 넌 전혀 생각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아비의 자잘한 글이 네게는 참 재미있는 정보가 되리라. 매일 네게 사랑한다는 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들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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