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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Jul 11. 2022

지옥의 여름 캠핑

고생많았다, 우리 아들

아들, 날씨가 무척 덥다. 


지지난주엔 이런 날씨에 너네 엄마는 캠핑을 갈거라고 예고했고 내게 같이 갈 거냐고 묻는 질문에 아빤 침묵했다. 너네 엄마와 이모는 보나마나 즐거운 술파티를 벌일 것이고, 거기에 내가 간다는 건 널 전담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내가 가지 않으면 난 너가 없으니 상당히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기적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만, 아이를 가진 부모가 아이에게 해방되는 쾌감은 꽤 크단다.


요즘 말로 알쓰(알콜쓰레기)인 아빠는 사실 술의 맛을 모른다. 일본 드라마인 심야식당에서 추억의 음식에 곁들여 먹는 맥주가 조금 맛있어 보이는 정도가 전부다. 끽해야 주량은 맥주 반병이 고작일거다. 그런 내가 네 엄마의 애절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더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그래도 그 와중에 애를 나한테 맡기지 않는 건 네 엄마의 양심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결국 출발하는 당일, 난 낮잠을 조금 자고 따라나섰다. 이게 얼마나 굳은 결심이 필요한지 모를 거다. 술꾼의 갈증을 해소하는 길에 2시간이 넘는 안동까지 이동에 그곳에서의 네 생활이 어떨지 심히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훗날 네가 내게 섭섭한 상황이 온다면, 난 단연코 그 누구보다 너를 사랑했다고 자부할 수 있으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일주일은 할 수 있다. 운이 없게도 내 차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오디오 블랙 아웃이 반복되어 카센터에 있다. 내 차를 회사에 세운 다음, 네 엄마차(곧 우리 가족차)를 타고 같이 출발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결정에 후회를 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 잡았다.


새로운 경유지 탓에 도착하는데 3시간에 가깝게 걸렸고, 넌 차안에서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고도 힘들어했다. 몸이 찌부둥했을텐데 넌 짜증 한 번 없었다. 아들아, 아홉살의 나이는 아직도 이기적일 나이인데 넌 참 착했다. 남을 배려할 줄 알았으며, 네가 불편한 걸 잘 참았다. 애석한 건 타인의 감정 동화가 없고 감정 인식에 둔한 네 엄마는 그러한 것을 일일이 읽진 못했다. 섭섭해마라. 난 그런 널 볼 때마다 대견했단다.


우리가 사는 곳은 청도의 전원주택이다. 내가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이미 거주권이 거의 캠핑이나 마찬가지인 대자연의 품에 있는데 네 엄마는 왜 캠핑을 고집하는가이다. 넌 나와 같이 전형적인 집돌이였다. 편안한 곳에서 자유롭게 쉬는 걸 즐겼다. 그런데 몇주간 외출이 없으면 네 엄마는 거실의 티비에서 캠핑 유튜브를 틀면서 뚫어져라 봤다. 아빤 그게 시위처럼 여겨졌다. 


청도로 이사온 이유는 아빠의 어린 시절 기억때문이다. 어머니(그러니까 너의 할머니)는 몸이 좋지 않아 부산에서 대구로 이사를 왔다. 건강을 위해 우린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시골집에서 살았다. 집에서 50미터쯤 앞에 나가면 냇가가 흘렀고, 집 아래에는 땅에서 샘이 퐁퐁 솟아나 미나리밭이 펼쳐져있었다. 마당의 사과나무는 해가 질때마다 올라가서 구경하는 곳이었으며, 냇가의 돌들을 옮겨 돌담이나 닭장을 만들곤 했다. 물론 아버지(너의 할아버지)는 여전히 술을 좋아했고 폭력적이셨다. 좋은 가장은 아니셨다. 어쩌면 내가 가진 술에 대한 증오는 아버지에게서 발현된 것 같다. 어쨌든 난 그곳에서의 기억이 너무 좋았으며 너도 느꼈으면 했다. 네 엄마를 설득하는데 무려 3개월이나 걸렸으며, 결국 모든 배달음식은 내가 직접 배달하고 쓰레기 버리는 일은 신경도 안쓰도록 내가 차로 옮겨서 버리는 것으로 협상은 타결됐다.


내 예상은 하나도 어긋나지 않았다. 캠핑장에 에어컨이 있는 원룸이 있었지만 실내 온도는 40도에 가까웠고 에어컨을 틀어도 시원해지지 않았다. 도착 후 한창 낮인지라 타프를 친다고 하더라도 실외에 있는 건 불가능해보였다. 난 네 엄마에게 널 데리고 간이 수영장에 가라고 했으며 짐은 내가 다 내리겠다고 했다. 지금 우리집 차는 준준형 차량인데, 네 엄마의 캠핑 장비 탓에 트렁크를 넘어 좌석에까지 짐을 끌어안고 타야했다. 아마 네 엄마는 새로운 suv를 사는데 완벽한 빌드업을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간이 수영장엔 애들이 넘쳐나고 예민한 네가 제대로 놀았을리 없다. 그나마 물안이니 더위는 피하기 나았으리라. 짐을 다 내리고 나니 네 엄마는 네가 날 찾는다고 말을 전했다. 짐 다 내렸으니 가서 너랑 놀아라는 지령인가 싶었지만, 더운 날씨에 난 그럴 기력이 없었다. 수영을 다하고 네가 왔다. 그래도 웃는 얼굴이어서 난 마음이 조금 놓였다. 바로 옷을 갈아입히는 네 엄마에게 샤워는 안시키냐고 물었다. 네 엄마는 수영장에서 놀았는데 뭐가 어떠냐고 했다. 난 새삼 힘들더라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아까 길에서 지나가면서 꼬마들이 누가 수영장에서 오줌을 쌌고 그 범인을 너로 지목하는 걸 들었다. 네 성격을 아는 나로써는 넌 절대 그러지 못한다. 아마 그 말을 한 아이가 범인이고 너를 범인으로 모는 듯한 느낌이었다. 난 네 손을 잡고 샤워실로 향했다. 네 엄마는 샤워타월 기능의 장갑과 듣도보도 못한 얄딱꾸리한 비누를 쥐어줬다. 개인의 취향은 존중하고 싶지만, 아들에게도 브랜드 없는 가성비 위주의 제품 구매 기준은 난 아직도 납득하기 힘들다.


저녁이 되자, 네 엄마는 밖에서 고기를 구워먹자고 했다. 난 무리라고 했지만, 기어이 나왔다. 네 엄마는 지배광에 타인이 자신의 뜻을 굽히는 걸 용납하지 못한다. 예전에 네 엄마와 연애하기 전에 내가 만난 대부분의 여자는 순종적이고 배려심 많고 결정 장애가 있다고 생각될만큼 뭔가를 결정하기 힘들어하는 착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피곤해지면 그들대신 무언가를 결정하는 건 참 힘들었고, 주관이 있는 여자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만난게 네 엄마였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결혼해버렸다.


결국 땀흘리며 힘들어하더니 네 엄마, 이모, 넌 결국 에어컨이 있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난 더운 밖에서 고기를 구워 한그릇씩 안으로 넣어줬다. 아마 내가 없었다면 넌 밖에서 비오듯 땀을 흘리며 입맛을 읽고 고기를 먹은 듯 만듯 했을 것이다. 모두 고기를 다 먹고 남은 고기를 구워다 안에서 먹고 나니, 네 엄마는 불멍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까 짐을 내릴 때 차안에서 장작 한박스를 보긴 봤다. 그냥 있어도 더운 이 여름에 불멍이라니... 결국 내가 장작에 불을 지피고 불을 피웠다. 아빤 어릴 적에 불피우는 걸 여러번 해봤다. 그렇다고 더위를 못이기는 건 아니다. 9시가 조금 넘자 네 엄마는 급히 널 재우러 들어갔다. 네가 자야 술꾼들의 자유가 펼쳐진다. 뙤약볕에서 타프를 치느라 네 엄마도 피곤했나보다. 난 이모랑 꽤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네 이모는 네 엄마랑 많이 다르다. 타인의 말을 공감할 줄 알며, 좋은 리스너였다.


호기롭게 온 네 엄마를 위해 깨우고 난 네 옆의 자리를 차지했다. 에어매트가 오사카의 눈소리처럼 뽀드득 거린다. 새로운 매트를 사자고 노래를 불러도 네 엄마는 사지 않는다. 7천원짜리 버너 하나로 밥과 고기를 해야 한다. 괜찮은 버너를 검색해서 안내해도 사질 않는다. 불편함은 오롯이 내가 감수했다. 그렇다. 난 제법 화가났다. 그래도 2주나 지난 다음이라 꽤 평온해진 상태이긴 했다.


밤새 술판을 벌이고 아침을 뭘 먹이냐고 물으니 인스턴트 라면을 꺼냈다. 난 또 화가 났다. 넌 어릴 때부터 피부에 아토피가 있었다. 임신 기간에 라면을 먹지 말라고 그리 말해도 네 엄마는 라면을 간혹 먹곤 했다. 할머니는 그런 널 위해 유기농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 1년 넘게 널 먹였다. 지금은 꽤 좋아졌지만, 아직도 땀이 나거나 특정 조건에서 넌 간지러움을 호소한다. 그래서 난 가급적 인스턴트를 먹이지 않으려고 과일이나 자연에서 먹거리를 찾지만, 네 엄마는 젤리나 인스턴트를 네게 스스럼없이 권한다. 예민한 성격탓에 낯선 곳에 가면 난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게다가 뽀드득 거리는 에어매트는 수면자가 움직일때마다 날 깨게 했다.


돌아온 일요일날 난 결국 새벽에 위장통증으로 잠을 깼다. 몸이 약해지면 위장이 가장 먼저 반응했고, 소화기능이 떨어져 새벽이나 식사 후에 통증으로 고생했다. 통증이 다시 화를 부르고, 화가 다시 스트레스가 되어 통증이 된다. 간혹 네 엄마가 무릎꿇고 잘못했다고 비는 판타지를 꿈으로 꾸기도 한다. 말 그대로 판타지다. 현실에선 일어날 일이 없다. 몸 상태가 안좋은 널 보며 측은하기도 하고 내가 가서 이정도인데 안갔으면 넌 몸살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위안해본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난 아직도 위장 통증에 시달리지만, 네 엄마는 관심이 없다. 아들아, 결혼은 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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