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질문에 답하다.
사람의 특질은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대부분 시작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다라고 믿으니, 유전적 요인은 마치 전체를 정의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제 열살이 된 네게 보이는 가장 큰 특이점은 어마어마한 '게으름'이다. 아빠 역시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현재 네게 보이는 이 게으름은 모두가 말하지 않지만 네 엄마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모두 잘 알고 있다.
열살이 되어도 넌 혼자 옷을 입으려 하지 않고 입혀주기를 바란다. 깡마른 애처로운 몸매의 너는 식사 역시 적극적이지 않다. 애가 타는 할머니가 네게 밥을 숟가락마다 떠먹여주신다. 내게도 할머니의 기억은 포근하고 그리운 것이다. 늘 맛있는 음식을 손수 해주셨고 잠투정이 나기 전에 귀 뒤로 머리를 넘겨주며 재워주셨다. 네게 할머니는 어떤 존재일까 궁금하다. 다른 건 몰라도 네 평생 20키로가 넘는 거리를 매일 출퇴근하며 너를 돌봐주신다. 아빠와 엄마가 출근하기 전에 도착하셔야 되므로 사실상 매일 새벽 시간에 잠을 깨우고 퇴근하고 네 식사가 마치는 시간인 7시반에서 8시까지 계신다. 이 말도 안되는 노동에 내가 드리는 처우는 형편없다. 그렇다. 아빠는 불효자다.
몸에 좋은 영양제를 여럿 대령했지만 넌 입맛에 맞는 것이 아니면 먹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 네가 가장 즐겨 먹는 것은 포도맛 젤리형태의 영양제이다. 성장통 때문인지 넌 다리를 자주 주물러달라고 한다. 미네랄이 성장통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사과맛 시럽형의 미네랄도 추가로 먹는다. 네 할머니의 요리 실력은 수준급이다. 물론 대개의 인류는 자기 어머니의 음식 실력을 최상위로 두곤 하는데 네 할머니의 실력은 실제로 외부에서도 호평을 받는다. 문제는 그런 탓에 넌 조금만 맛이 없어도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
넌 엄마의 못된 성격과 아빠의 측은지심이 묘하게 융합된 아이다. 할머니는 그런 너를 '착한데 못됐다'라고 평하신다. 승질머리가 돋을 땐 못된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최근엔 넌 가출하겠다고 자주 으름장을 놓는다. 물론 가만히 두고 보니 날이 추워서 금방 들어오곤 했다. 칼 싸움을 하다 손가락을 다친 아빠가 아파하는 걸 보고 넌 나보다 먼저 눈물을 흘리곤 한다. 그런 일이 있은 뒤, 난 아파도 잘 아픈 티를 안낸다. 그리고 최근 상상력이 동원된 싸움놀이를 할 때 네가 왜 내게 복싱 글러브를 끼라고 한지 이해되었다. 고맙다. 아들아. 난 세상 누구에게도 받기 힘든 고마운 배려를 받는 느낌이었다.
나로부터 물려받은 것 중 안타까운 것은 '완벽주의'다. 스스로가 납득할만한 수준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에게 그걸 보여주길 싫어한다.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하는 모습이 부끄러운 것이다. 문제는 사람이 성장하거나 새로운 것을 깨우치는데는 실수나 실패는 당연한 것인데 그걸 회피하다보니 경험이 제한적이게 된다. 이건 네게 꽤 큰 손실이다. 내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많은 경험을 쌓는데 시간을 투자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난 완전 다르다. 지금의 난 매우 도전적이고 새로운 일을 하는데 두려움이 없다. 너도 그렇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 '아빠'라고 말해주었다.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판다와 귀여워 죽는 햄스터가 동급이다. 내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선물의 말이다. 모자란 기억력에 훗날 네가 "아빠, 난 어떤 어린이였어?"라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답변을 이리 글로 남겨두면 어떨까해서 적어본다. 언제 네가 이 글을 볼 지 모르겠지만, 나이가 든 너와 난 꽤 데면데면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 난 세상 누구보다 널 사랑한단다. 앞으로도 그럴 셈이구.
사랑한다,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