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지금 제정신인가? 하며 들어왔다면 잘 찾아 오셨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제정신이고, 저 타이틀은 실제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기본으로 깔고 가는 태도이다.
세상에 상처받을 일이 참 많다.
수단도 다양할 뿐더러 상처를 받자면 한도 끝도 없이 받을 수 있다.
친구가 나에게만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 상처 받고
연인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상처 받고
가까운 누군가가 믿고 빌려준 돈을 들고 도망을 가서 배신감에 상처 받는다.
위 세 케이스에는 공통점이 있다.
상대가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거래처 사람이 나에게 연락을 자주 하지 않으면
길가던 사람이 나를 무시하면
어쩌다 한 번 본 사람이 내 돈을 떼어먹으면
사태의 경중에 따라 별 생각이 안 들거나 기껏해봐야 분노를 느낄 것이다.
상처를 받지는 않는다.
우리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에게만 상처를 받는다.
마음을 주고 기대를 한 상대일수록 더 깊이 상처받는다.
하지만 그 일이 정말 상처가 되는 일이라면,
우리는 누가 그 행동을 하든 상관 없이 늘 상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어떨 때는 상처가 되지만 어떨 때는 말짱하다.
그건 참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이쯤 되면, 그 일이 정말 상처받아 마땅한 일인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가 내게 한 행동은, 내가 해석해 의미를 부여하기 전까지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다.
아무런 공격력도 없다.
하지만 내가 그 행동을 해석하고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는 순간,
좀전까지만 해도 아무 힘이 없던 행동이 갑자기 나를 할퀴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 행동 자체에는 아무런 공격력이 없다.
내가 무지개반사를 시전하는 순간 무기자차를 만난 자외선마냥 무력하게 튕겨져 나갈 뿐.
하지만 우리는 그 의미없는 행동에 공격력을 부여하고 기꺼이 두들겨 맞는다.
우리는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순간 피부를 허물어 스스로의 속살을 내보인다.
원하면 얼마든 상처입히라며 가장 연한 살을 내어준다.
상대가 그것을 요구하지 않아도 그렇다.
누구와 관계 맺든 힘들게 지켜온 내 피부장벽을 부러 녹일 필요는 없다.
나의 형체를 허물어뜨려 그를 내 일부로 삼았다가,
그가 떨어져나가는 순간 내 살이 뜯긴 것처럼 아파할 필요가 없다.
내가 튼튼하게 형체를 갖추고 있어야 나를 지킬 수 있고
건강한 상태로 누군가와 관계 맺을 수 있다.
그가 나를 상처입히도록 허락한 게 누구인지 안다면,
외부 세계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