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好意)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법

모두가 모든 순간 안전해질 수 있다면

by Taylogue

살다 보면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은 호의를 받을 때가 있다.


친근한 눈짓, 다정한 말 한 마디, 문을 잡아주거나 떨어진 물건을 주워주는 손길, 따뜻한 밥과 맛있는 술, 깊은 관심과 위로, 오랫동안 기다려온 기회, 애정.


그게 무엇이든, 기대하지 않은 호의는 놀라웠다가, 멋쩍었다가, 때로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특히, 상대가 낯설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내가 그 호의를 그대로 돌려줄 수 없을 때 더 그렇다.


내 지난 인생을 되돌아보면, 빈말로라도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노력한 것 이상의 결과를 얻는 일은 감히 기대조차 하지 않았고, 드물게 딱 내가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주어지는 날에는 감사해 몸 둘 바를 몰랐다. 그 정도로 운과는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그때는 몰랐지만) 남들에게 허락된 만큼의 호의는 늘 주어졌다.


처음에는 그 호의가 너무 낯설고 불편했다.


내게 호의란 운과 비슷한 선상에 놓여 있었는데, 운이 낯선 삶을 살아오다 보니 호의도 내게는 딱 운만큼 낯설었다. 낯선 사람의 호의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편하게 여기겠지만, 나는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주어지는 호의도 감당하지 못하니 문제였다. 받은 것을 그대로 갚아야 할 것 같다는 의무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내가 받은 호의가 내 능력으로 갚을 수 있는 수준일 때는 최대한 빨리 갚아낸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갚을 능력이 되지 않을 때는 마음이 괴로워 숨이 턱턱 막혔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친한 선배가 사주는 밥 한 끼에도 이렇게 마음을 태워야 하나.




온 마을이 한 아이를 함께 키워내는 광경은, 받은 것을 상대에게 반드시 상환해야 하는 자본주의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내 아이도 아닌 아이에게 무슨 덕을 보겠다고 그만한 배려와 애정을 쏟는단 말인가. 그 아이가 자라도 그걸 갚기는커녕 내 이름조차 기억 못 할 텐데.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 과거와 비교하자면 훨씬 빈도수가 줄긴 했지만, 이 장사꾼의 세상에도 여전히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다시 마주칠 일 없는 사람에게 친절한 말을 건네고,

그리 길게 교분을 나눌 것 같지 않은 상대에게 아무렇지 않게 꼭 필요할 것들을 선물한다.


돌려받지 못할 상대에게

돌려받지 못할 마음을 건네고

돌려받지 못할 시간과, 때로는 돈을 투자한다는 것.


마음을 닫아걸고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사는 삶만이 안전하다 믿던 내가 이 '대가 없는 호의'라는 녀석을 흑심 없이 대하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오직 이 대가 없는 호의만이

우리 모두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다는 걸.




모든 생명체는 언젠가 죽지만,

호의는 죽지 않고 평생을 살 수 있다.


누군가에게 건네어졌다 되돌아와 그 주인 되는 생명체와 더불어 언젠가 소멸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주인에게 되돌아오지 않은 채 또 다른 상대, 또 다른 상대에게 거듭해 전해지는 방식으로,

그렇게 평생을 산다.


+1-1=0이다.


나는 내 지난 평생 동안 상대에게서 받은 호의를 되돌려주어 0을 만드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지만,

사실 그건 너무 공허한 일이다. 상대가 대가 없이 건넨 호의를 내가 되갚아버릴 때, 호의는 죽는다. 정말 0이 된다.


당장은 받은 것을 똑같이 돌려주는 일이 대단히 공평하고 아름다운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렇게 받고 돌려주고, 주고 다시 돌려받는 관계가 안전한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그건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과 같다.


상대가 건넸던 마음과 시간과 돈의 가치는, 내가 그것을 그 당사자에게 정확하게 셈해 돌려주는 순간 그냥 0이 된다.



주위 사람들에게 돈을 잔뜩 빌린 후에 갚지 말라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상대의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고 소위 '먹튀'하라는 이야기도 물론 아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기대하지 않은 호의를 베풀었을 때,

이제 나는 진심으로 기뻐한 후 기꺼이 그 호의를 받아들인다.


때로는 내가 그에게 호의를 베풀기도 한다.

다만 그 마음은 '이전에 받았던 호의를 갚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가 나에게 처음 베풀었던 호의처럼, 나 역시 그에게 대가 없는 또 하나의 호의를 베푸는 것일 뿐.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내게 대가 없이 베풀었던 호의들이 있었음을 언제나 기억하는 것이다.

나 역시 때때로 누군가에게 기쁜 마음으로 대가 없는 호의를 건네고, 그 호의가 내게 곧바로 돌아오기보다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어져 세상에 방사형으로 퍼져 나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면 호의는 더 이상 두 당사자 간의 거래가 아닌 외부 세계로 퍼져나가는 하나의 파장이 된다.

모두가 각자 서있는 자리에서 호의의 파장을 내보낼 때, 모두가 반드시 근처에 있는 누군가의 파장 안에 놓이게 되므로,

모두가 모든 순간 호의에 노출된다. 모두가 모든 순간 안전해진다.


그건, '내가 주면 쟤가 꼭 갚겠지' 하며 둘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갈 뿐인 거래와는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수준의 안전이다.


살다 보면 내가 가진 것들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 상황이 있다.

누군가의 호의가 반드시 필요한, 불안(不安)한 순간이 있다.


우리가 각자 받은 호의를 다시 다른 사람에게 건네면,

그렇게 호의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살면,

모두가 모든 순간 안전(安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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