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멍청비용과 화해하는 법

by Taylogue

이건 아주 따끈따끈한 소식인데,

방금 전, 정확히 한 달 전에 (간만에) 굉장히 공들여 쓴 글을 단 1초의 실수로 날려버렸다.


코멘트를 지운다는 게 게시글 삭제 버튼을 누른 거다.

(블로그 게시글 자동백업 안 되는 거 왜 아무도 나한테 안 알려줬어...?)


농담이고,


우리는 누구나 멍청비용을 치르며 산다.


임시저장, PDF로 저장하기, 다른 블로그에 백업해 두기 등 수많은 방법들이 있었음에도,

[정말 삭제하시겠습니까?]라는 얼러트에 무지성으로 [예]를 눌러 1시간 넘게 공을 들인 게시글을 날려먹는 나처럼.


버스 하차태그를 하지 않아 운임을 배로 물기도 하고,

시간 안에 반품 신청을 하지 않아 환불이나 배상을 못 받기도 하고,

정말 어렵게 당첨된 상품, 이벤트에 제때 회신하지 않아 놓치기도 한다.


물론 위의 세 예시 다 최근에 내가 한 짓이고 이것 말고도 내가 여태 치러온 멍청비용을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그럴 가치가 없는 물건이나 사람에게 생각 없이 시간과 돈을 쓰기도 하고,

누가 봐도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음에도 귀찮다는 이유로 생각을 게을리하다 최악 또는 차악의 선택을 한다.



나는 정말 대단한 완벽주의자이다.

특히나 남보다도 나 스스로에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편인데,

문제는 그 엄격함에 비해 허술하기 짝이 없는 내 정신머리...


그 와중에 나는 욕심도 많기 때문에 그 어느 기회도, 그 어느 순간 하나도 놓칠 수 없어

실수를 하고 만 나 자신을 탓하고 학대하고 과거의 실수를 곱씹고 또 곱씹으며 후회하곤 한다.


그렇다고 이번 에피소드도 그렇게 끝난다면 내가 발전이 없는 거고,


게시글을 날려 먹고 혹시나 복구할 방법이 있지는 않을까 약 10분간 검색을 해보았다.

나에게 해당되는 복구방법은 안타깝게도 없었지만, 다음과 같은 소득이 있었다.

게시글 1개가 아니라 카테고리 전체를 한 방에^^ 날려버린 사람들이 꽤 있었다 > 임시저장과 백업을 생활화하자 (게시물이 더 쌓이고 더 큰 피해가 생기기 전 경각심 획득)


네X버 블로그는 게시글에 대해 PDF 저장 기능을 제공한다 > 앞으로 작성할 게시글을 PDF로 저장해 보관하는 방법이 있음 (앞으로의 대비 방법 습득)


글을 다시 쓸 생각을 하니 아득하다 > 왜 아득하지? > 내 글 쓰는 속도나 퀄리티가 나빠졌구나 > 다시 갈고닦아야겠다 > 100일 챌린지를 해볼까? (자기 계발에 대한 동기부여+지지부진하던 블로그 활동 부스팅)


그렇게 나는 게시글 하나를 잃는 것으로 막을 수 있었던 사태에 감사하고, 앞으로 어떻게 같은 (혹은 더 큰) 실수를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을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글 하나를 잃어도 아무렇지 않게 뚝딱뚝딱 다시 쓸 수 있도록 녹슨 글쓰기 실력을 가다듬을 수 있는 챌린지를 시작하게 되었다. (글쓰기 그만둔 이후로 오랜 숙제이기도 했음)



가장 큰 소득이라면 (이건 이번 경험에서 얻은 건 아니지만)

나의 실수를 빠르게 흘려보낼 수 있는 마인드셋을 거의 갖추게 된 것.


나는 정말 많은 실수를 하며 살아왔지만, 스스로 높게 사는 부분은 내가 그 실수들 위에 주저앉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수했네 > 왜 했지?(자책)

로는 아무런 발전이 없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너무 괴롭다.


실수했네 > 왜 했지? (고민) > 이래서 실수했네 > 앞으로는 이렇게 해야지 > 오? 이런 것도 해볼 수 있겠네?

보다 생산적인 사고과정을 밟아갈 수 있는 정신적인 맷집이 필요하다.



실수는 괴롭다.


모두에게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나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럴 거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실수를 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세상은 실수를 하는 사람 or 실수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실수한 후에 오히려 발전이 있는 사람 or 본인이 저지른 실수 위에 주저앉아버리는 사람으로 나뉜다.


본인이 저지른 실수의 감옥 안에서 살아가고 싶지 않다면,


이미 일어난 일은 석 달 열흘을 자책해도 바꿀 수 없다 빠르게 인정하고,

그 실수로부터 뭘 얻어야 내가 앞으로 조금이라도 '덜' 실수하거나 '더' 현명하게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될지 궁리하는 게 맞다.

멍청비용을 투자해 성장이 일어난다면, 그건 더 이상 멍청비용이 아닐 거다.



나는 방금 1시간을 들여 쓴 게시글을 잃었다.

하지만 그 결과 나는 오늘부터 100일에 걸쳐 잃어버린 내 글을 되찾기로 결심했고, 보란 듯이 첫 글을 써냈다.

이쯤이면 너무 남는 장사라, 한 달 전에 썼다 방금 전에 날린 글 같은 건 이제 아쉽지도 않다.


멍청비용을 지불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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