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by 최서희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나뭇잎을 내리치는 소리,
급하게 흙으로 스며드는 소리.

소나기다.
길게 내릴 것도
오래 남을 것도 아닌
그 한 때에
마음이 붙들린다.

방 안에 앉아
소리만 들어도
소리만 들려도
마치 온몸이 묶인 것처럼
붙들리고 만다.

소나기는 그렇게
내 머리카락을
내 눈썹을
내 얼굴을 타고 내리다
결국
방안을 가득 적시고야 만다.

엄마랑 언덕 아래 호박을 따고 내려오다가
소나기를 만났다.
서로의 얼굴만 한 호박을 머리에 이고
재잘거리며 내려오던 그 길에서
차마 피할 겨를도 없는
그 순간에
소나기를 만났다.

숨이 찰 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소나기보다 더 세차게 뛰어
처마 밑으로 숨어 들어서야
우리는 웃었다.
물에 빠진 생쥐꼴을 비웃으며
처마가 들썩이게 웃어댔다.

갑작스럽고,
무례하고,
대책 없는 소나기 덕에
삶에 찌들어가던 엄마가
소녀처럼 요란스럽게도 웃었다.
그런 엄마 덕에
엄마 같았던 딸이 아이답게 웃었다.

소나기가
방 안 가득 차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금세 또 지금이 그립다.
엄마가 늘 그리운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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