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서부터 한 발 물러나 있는,
‘그저 낙서’라며
애써 의미를 피하는,
제 몫의 책임조차 스스로 지지 않겠다는,
묵인된 선언이 담겨 있는,
말도 아닌 것이 글도 아닌
낙서
낙서의 시작이다.
쓸모없다는 선언.
그러니 해도 괜찮다는 허락.
무언가를 쓰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고,
지우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는 것.
그러니 낙서는 자유로울밖에
가볍지만,
그렇지만 허투루 흘러가지는 않는
말보다 오래 눌린 숨이 있는
말도 아닌 것이 글도 아닌
낙서
종이에 눌러쓴 생각은
종이에 새겨둔 마음은
시간이 흘러도 바래기만 할 뿐,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뒤돌아서면 사라질 것을 전제
말처럼, 숨처럼
흘러가도록 만들어진 것.
어느 순간부터
쓴 글을 다시 읽는다.
다듬으려는 것이 아니라,
지우기 위해
한번 더 읽는다.
마음은 늘 흐르는데,
글은 그 자리에 박혀 있기 때문에
하루 전의 내가,
오늘의 나를 가두지 않도록,
변할 가능성이 있다면
지운다.
흔적도 없이 박박.
시간이 지나
그 문장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으면,
그제야 인정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오늘도 이런 사람이구나.
어쩌면 내일도 이런 사람일지도 모르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