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 原點

시작이 되는 출발점으로 돌아오다.

by 최서희


새벽 세 시.
물 한 잔을 마시고, 차가운 거실 바닥에 눕는다.
암막 커튼 두 짝의 틈 사이로 흘러드는 불빛을 피해, 조심스레 몸을 돌린다.

동쪽으로 누우면 창틈의 불빛이,
서쪽으로 돌아누우면 베란다 너머 가로등이,
몸을 90도로 돌려 눕자
천장의 등에서 새는 희미한 빛이
그물처럼 나를 덮고 또 덮고 또 덮어
꼼짝할 수 없게 가둔다.

결국 쿠션에 얼굴을 묻고 엎드린다.
질식할 듯한 숨 막힘 사이로 오히려 숨이 트인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침대 곁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눈을 감는다.

눈을 뜨면 천장뿐인데
눈을 감으면 온갖 것이 쏟아진다.
어제의 잘못들,
오늘에 밀려올 일들,
그리고 내일, 또 해치워야 할 것들.

딱히 할 일은 없는데,
눈만 감으면 세상에서 가장 피로한 사람이 된다.

문제는 ‘시작’이다.
어제의 바보 같은 결정들,
그 결정이 낳은 결과들.
내가 한 선택도, 남이 한 선택도
모두 한심하다.

무엇보다
되돌릴 수 없는 어제로부터
오늘을 시작해야 하는 내가
스스로 견디기 어렵다.

하루쯤은 나아졌겠지 했는데
일어나 보면 다시 새벽 세 시.
시간은 흘렀지만, 나는
늘 그 자리,
원점이다.

평범한 하루도
반의 반으로 접어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
새벽 세 시에 시작하는 하루는
지나치게 길다.

아무 생각 없이, 기계처럼 살고 싶다.
초침처럼, 일정한 속도로 분주히 움직이면
이 하루도 짧게 느껴질까.

불면증 약에는 잘도 적응하는 몸이
왜 인생에는 적응하지 못하는 걸까.

시원찮은 몸을 탓하다가
결국에는 나를 탓한다.

남들은 그럭저럭 살아가는데
나는 잠 하나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거실을 빙글빙글 도는 꼴이
우습고 가엾다.

그렇게 쌓인 날들이
나를 자라게 하지 못한 채
늙게만 한다.

자라지 않고 늙기만 하는 나.
그게 못내 서운하다.
작아지고, 쭈그러들고,
힘 빠질 날들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 같아
지금이 더 안타깝다.

혼자였다면 어땠을까.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아이들이 없다면
지금쯤 땅콩을 심으며 살고 있었을까.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 같아
다시 눈을 감고
양을 센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keyword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