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이 함께 존재하다.
진료가 끝날 즈음,
일어나다 말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평생 이런 건 아니죠?
이러다 괜찮아지겠죠?”
젊은 의사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한다.
“갑자기 나아지는 사람도 있고,
그냥 이렇게 가는 사람도 있어요.”
질문도 대답도 낯익고 허망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 진료비까지 결제할 거냐는 말에
평소와 달리 고개를 끄덕인다.
4주 후에 또 올 테니까.
아니, 와야 하니까.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한 건가?
시간이 흘러
2년을 채워가다 보니 인정하기로 한 거야?
여전히 마음은 시끄럽고 복잡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로 한다.
포기도, 수용도 아니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내 공간을 나누어 쓰며
사는 수밖에 없다.
그냥, 공존하는 거다.
공황이 하루의 대부분을 삼켜버리는 날도 있고,
없는 듯 스쳐 지나가는 날도 있다.
그렇게 하루를 견디고,
한 달을 보내고 나면,
올해가 저물고
새해가 올 것이다.
머릿속에 이어 붙은 생각들이 끊이지 않아
하루 종일 무언가를 듣는다.
그러다 속이 메스꺼워질 때면
양의 수를 센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가끔은 생각한다.
10평 남짓한 밭이 있으면 좋겠다고.
그 밭을 갈고 땅콩을 심고,
물을 주고, 흙을 만지며 고된 하루를 보내면
밤에는 곯아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물 때문인지,
햇빛 때문인지,
다육이들은 자꾸 시들고
나는 마른 잎을 집게로 뽑아내며
다시, 땅콩을 생각한다.
평생 이렇게
땅콩을 심을 생각만 하며 살아도 좋을 것 같은데,
내 생각인데,
왜 나는 이 생각 하나도
뜻대로 붙잡지 못하고
수백 마리의 양을 세고 또 세며 사는 걸까.
“오늘은 기분이 어때?”
매일 반복되는 인사에 짜증이 밀려온다.
눈치를 살피는 남편에게 또 미안하고 죄스러워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 땐
약을 먹는다.
한 입에 털어 넣고는 양을 센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