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만 한 크기의 화분에 담긴
작은 다육이부터 시작했다.
큰 돌봄 없이도 고만고만 살아남는 아이들.
서로 다른 화분에 담긴 다육이를 하나씩 들여
거실 한켠에, 마치 시골집 장독대처럼
독립된 자리를 마련했다.
옹기종기 줄을 맞추다 말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무질서하게,
툭툭, 무심히 내려놓았다.
하루가 지나고
수경재배로 자라는 잎이 큰 아이부터
제법 식물처럼 생긴 녀석들까지
하나둘씩 늘어갔다.
알록달록한 화분에 담긴 식물들이
자리를 잡고 나니, 그럴듯하다.
이 작은 정원도 이제 제법 ‘공간’이 되었다.
저녁에는 훈제 오리고기를 구워 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스크림 할인점으로 마실을 나가
하드바를 하나씩 물고 돌아와
다시 식탁에 마주 앉는다.
며칠을 고민했다.
어떻게 꺼내야 할지.
그러다 결국,
생각나는 대로 말하기로 한다.
“내가 좀 아파. 병원에서는 공황이라고 해.
감기처럼, 마음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곧잘 걸리는 거래.
2년 전부터 병원 진료를 받고 있어.”
아이들의 반응이 두려워
식탁 모서리에 머물던 시선을
조심스럽게 큰아이에게 옮긴다.
뭐, 그럴 수 있지,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많이 놀란 것이다.
둘째는 눈물이 글썽이며 기도해 주겠다고 말한다.
울지 않는 큰아이가
내 말을 알아들은 것 같아,
슬프다.
“모두가 도와줬으면 해.
가족은 식탁의 다리 같아서,
한쪽이 힘이 없으면
나머지 셋이 더 힘을 들여 무게를 버텨주는 거래.”
도와달라는 말을 끄집어 내려놓고는
은근슬쩍 남편에게 말을 넘긴다.
남편은 아이들의 감정을 묻고,
큰아이는 어깨만 들썩이고.
작은아이는 아프지 말라며 눈물을 흘리고,
나는 조용히 웃는다.
감기 같은 거라고.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거라고.
좋아질 거라고.
진짜 곧 좋아질 것처럼 웃으며 그렇게 말한다.
남편은
아주 작은 습관부터
스스로 해보자고.
“엄마는 이제,
너희의 엄마나 아빠의 아내보다
자기 자신으로 보내는 시간이 필요해.”
우리가 엄마의 짐을
두 겨리소처럼 함께 메자고,
아이들의 처진 어깨를
‘파이팅’으로 힘껏 들어 올리는 남편은
마치 쟁기를 힘겹게 잡고 소를 모는 늙은 농부 같다.
그래,
이 또한 이들의 몫이다.
나를 엄마로 둔 아이들,
나를 아내로 둔 남편의 몫.
기대고 싶다는 말을
처음으로 한 날이었다.
내 어깨 위 짐을
조심스레 나눠 얹은 날이었다.
무겁고 어렵기만 했던 부탁의 끝은
가볍고 고맙기 그지없다는 걸,
가족은 그런 존재라는 걸,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약하고 미숙한 존재라는 걸
도와달라는 말을 하고 나니
그제야 알 것도 같다.
나도 가족의 일부일 뿐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