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해봐!

by 자스민

맏며느리들은 마음적으로 명절이 돌아오면

힘이 쭈욱 진다.

명절 준비로 몸과 마음이 지친다. 나에게도 딱 붙어 있는 맏며느리라는 직책,


결혼 전에는 엄마랑 산책 다닐 때 지나가는 어르신들은 모두 다 한결 같이 나보고 다들 이랬다.

오머~!

아가씨! 예쁘게도 생겼네!

복 있게 생겨서 딱! 맏며느리 상이!

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온 터라 진짜 말이

씨가 될 줄 몰랐다.


그런 말씀을 하신 어르신들을 찾아가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냐고? 따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설. 추석의 변화.

어떤 이가 이 두 개 명절 변화에 대해 시위를 한다면 난 로 1등으로 앞장서서 머리에 띠를

두르고 찬성을 던지며 시위에 참석할 것이다.


맏이 되어 보지 않는 사람은 "고작 1년에 2번 가지고 생색이니?"

하겠지만 그렇다면 너희도 직접 부딪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유달리 보수적인 나의 시댁은 격식에 유난히

민감했기에 난 친정집 문화와 다름에 갈등이

많았다.

그렇다고 시댁을 내가 바꿀 수는 없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맏며느리에 대한 나의 역할은 잘하든 못하든 30년 동안 최선을 다했다.


명절은 그나마 쉬는 연휴가 있으니 손님을 맞이하고 준비하는데 시간적 여유가 있다지만

제사는 평일에 있을 경우 회사에 반차를 써서

음식준비를 야 한다.


쉼 없이 이어지는 손님들 맞이와 음식 준비로 맏느리 역할을 충실히 해오다 보면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코피가 날 때도 있었다. 휴지로 코를 막고 피는 멈추어도 나의 콧구멍에 휴지는 그대로 나기로 한다.

무언의 시위를 하고 싶은 거였다.

그런데도 시어머님은 그 어떠한 말 한마디를

안 하 냉정한 분 이셨다.

당연한 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당신도 그렇게 살아오셨으니 말이다.


2년 전 시엄마가 돌아가신 후

이제는 나의 어깨에 무거운 짐인 맏이라는

이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돌아 가신지 50년도 넘는 조부모와 아버님 제사 관해 작은 아버님께 상의를 한 후 허락하에 집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과감히 없버렸다.

난 가톨릭 신자이다.

대신 기일에 성당에다 그 영혼들을 위해 미사봉헌으로 대체한다.


시댁 형제 몇 분은 제사에 대해 불만은 는 가운데 내가 말했다.

"정 아쉬우시면 직접 지내시는 거 어떻신가요?

라고 했더니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누구나 본인이 겪어 보지 않는 한 의견은 낼 수 있으나 그게 옳다. 아니다. 는 섣부른 말은

삼가는 게 좋다고 생각된다.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올케,

누구의 형수,

라는 그 틀 안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유롭게

살 것이다.

이 정도면 나름 최선을 다했으니 된 거다.


나의 인생은 내 거니까!

이번 명절은 나 홀로 여행을 나왔다

든든한 지원군인 아들들과 며느리들의 응원에

힘입어 나만을 위한 재 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낯선 이곳에서 가장 행복한 방식의 쉼으로

스스로 결정을 내린 내가 기특하다.


나만의 휴식이 주는 가치는 결국에는 나를 되찾는 시간여행과 같다.


일상으로 되돌아갔을 때 더 큰 활력으로

에너지를 채우고 갈 것이다.


모든 며느리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