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크리스마스는 혼자 집에서 보냈고, 평소의 일요일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녀서 과거의 나에게는 크리스마스가 매우 특별하고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겨울쯤이면 다들 학교 끝나고 교회에 모여 언니 오빠들과 함께 노래나 율동, 연극 따위를 연습하곤 했다. 그때는 또래끼리 모여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재밌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오랫동안 연습하고 준비해 온 공연(?)을 마치고 저녁으로 떡국을 먹은 뒤, 다음 날 새벽송을 돌 때까지 간식을 먹고레크리에이션을 하며 밤을 새웠다. 그 시절에는 컴퓨터도,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여럿이 모여서 하는 007, 마피아, 전기놀이, 아이엠그라운드 등의 레크리에이션이 유튜브만큼이나 재밌는 오락거리였다. 이십 대까지도 크리스마스를 그렇게 교회에서 보내왔다. 서른이 넘고 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감을 품기 시작하며 교회는 나가지 않게 되었고, 특정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그런 신은 믿지 않게 된 지 오래인 내게 크리스마스가 더 이상 특별한 기념일이 아니다. 평범한 공휴일 중 하루일 뿐이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를 평범한 여느 일요일처럼 흘려보내고,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는 여전히 적응이 되질 않는다. 내 또래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꾸린 가족들과 함께 보냈을 것이다. 부부끼리 서로 선물을 주고받고, 아이들을 위한 선물과 이벤트를 준비하며 아이들에게 봉사(?)하는 고된 하루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나는 평일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 과일과 빵을 먹고 모바일로 브런치 글들을 읽으며 오전을 보냈다. 오후에는 스콘과 홍차로 점심을 먹은 후, 잔뜩 밀려있는 임용 인강을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는 평범한 보통의 크리스마스. 앞으로 긴 세월 혼자 살아가려면 이런 이벤트 없는 삶에 적응을 해야겠지 싶다.
내향적인 성격과 조울증 탓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연애도 많이 못하고 홀로 보낸 시간들이 많다.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사람을 많이 만나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고독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 옆에 사람이 없다는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나이 마흔 넘고 보니 어차피 인간의 속성 뻔하기에 나는 더 이상 인간에 대한 기대가 없고, 세상에는 맺지 않는 것이 차라리 더 나았을 인연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인과 폭력, 사기의 가해자는 생면부지인 남일 가능성보다는 지인이나 연인, 가족일 가능성이 더 크고 실제 사건들도 그렇다. 누군가가 죽었을 때 용의자로 가장 먼저 수사받는 사람은 그 사람의 배우자다. 사람이나 관계에 대한 열망은 없으나, 내가 고독감이나 외로움 때문에 나를 잃지는 않았으면 하는 열망은 있다. 과거의 나는 고독에 빠져 나를 잃은 채 살았다. 현재의 나는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혼자 있든 누구와 함께 있든, 누구를 만나든 어떤 경험을 하든, 어떤 감정을 느끼든 어떤 행동을 하든, 상관없이 나의 생각과 감정과 느낌과 현재의 삶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며 오롯이 받아들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