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왜 이럴까.
지금은 종교가 없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꽤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다. 교회를 다닐 때도 점이나 사주에 관심이 무척 많았는데 내 인생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치고 점이나 사주에 관심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단순한 관심이나 호기심에서 끝나지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방황을 했고 오래 믿어 왔던 하나님과 예수님을 떠났다. 점과 사주를 몇 년간 참 많이도 보았고 부적도 해 보았고 굿도 해보았다. 한때 사주를 직접 배워 보겠다며 대학원의 명리학과에 입학했던 적도 있었다.
남들이 볼 때는 이런 내가 어리석고 기이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당시의 나는 절실했고 절박했다. 풀리지 않는 단 한 가지 의문, 내 삶은 왜 이럴까. 내 인생은 왜 이럴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한때 온 세상을 헤매고 다녔다.
내가 성격이 못돼 처먹은 것도 아니고 생긴 게 흉측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학창 시절에는 주변에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던가, 친한 친구 사이에 누군가가 끼어든다던가, 나를 견제하려는 사람이 생긴다던가 하는 식이었다. 연애도 지속되기 힘든 이유들이 생겨나 중단되거나 누군가가 끼어들거나 내가 상대에게 마음이 정착되지 않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깨어졌다. 내 인생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고독과 고립"일 것이다.
직업적으로 봤을 때도 부유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십 대부터 준비하던 임용고시가 잘 안 풀려 현재까지 기간제 교사로 전전하는 삶을 살고 있다. 전공도 국어에서 특수로, 특수에서 상담으로 세 번의 전환을 했다. 기간제 교사라는 위치 자체도 고독하다. 근무지를 옮기면 그만인 관계들이라 나는 경조사비도 내기만 하고 돌려받을 일이 없으며, 정규직 교사들과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서 동료로 편하게 지내기도 어렵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내가 평가받는 기분이라 괜히 말과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오랜 시간 동안 내 사주팔자를 들여다보며 고민하고 연구했다. 나의 사주팔자는 좀 특이한 구성이다. 음양오행 중 토의 기운을 다섯 개나 가지고 있고, 화개살을 네 개나 가지고 있다. 화개살은 고독을 의미하는데 조상, 부모, 배우자, 자식 자리에 모두 들어 있다. 이렇게 되면 조상, 부모, 배우자, 자식과는 인연이 약하다고 해석한다. 할아버지는 어릴 때 일찍 돌아가셨고 내가 태어나기 전에 사업이 망해 조부모로부터 받은 덕이 없다. 아빠는 해외나 지방으로 일을 다녀서 함께 살았던 시기가 짧다. 오히려 아빠가 집에 있으면 어색할 정도였다. 그리고 현재까지 배우자와 자식은 없다.
토와 화개살 모두 종교, 철학, 심리학, 예술 등 정신성을 의미하는데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학부에서 국문학(예술)과 신학(종교)을 전공했다. 이후에는 무속 신앙에 몰두하다 서양의 영성과 뉴에이지를 거쳐 현재는 선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교육대학원에서 상담 교육을 공부 중이다. 토는 계절로 치면 봄과 가을의 간절기라 변동이 많다던데 그래서인지 종교도 전공도 직장도 변동이 많다.
또한 토와 화개는 세속과의 단절을 의미하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세상 돌아가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연예인에도 별 관심이 없었고, 대중가요나 유행 등에도 무심했다. 친구관계나 연애에도 또래들만큼 관심 가지진 않았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의 평범한 또래들과는 대화가 잘 안 통하고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다. 현재도 텔레비전이나 뉴스는 거의 안 보고 지낸다. 그리고 화개살은 내성적이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니 딱 내 이야기다.
사주를 보면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 이해가 간다. 토가 많고 화개가 많으니 속세와 동떨어져 홀로 지내는 게 아닐까. 사주에 금 기운이 없어 우유부단하고 결단력이 없고 끝맺음이 약한 편이다. 그래도 나의 사주는 토 네 개를 지지로 깔고 있는 형국이라 재물복이 많다니 기대해 볼까 한다. 물론 아직은 땅속에 푹 파묻혀 있는지 코빼기도 안 보인다.
작년은 대운이 바뀌는 해였다. 이번 대운에는 역마살이 들어 있다. 그래서일까, 작년에 이사를 했고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토에게는 수의 기운이 재물을 가져다준다. 해외여행 자체가 수의 기운을 받는 행위라니, 해외여행을 자주 다녀야겠다. 집에 어항이라도 들여야 하나?
이 모든 것들은 나의 고독을 이해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그 끝은 받아들임이었다.
나는 고독하게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