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나를 구원할 거야.
오늘은 2월 28일. 겨울방학이 끝났다. 사흘간의 공휴일이 지나면 나는 학교로 출근이다. 부쩍 자란 아이들을 마주하고, 작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일들을 하겠지.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힌다. 솔직히 업무의 강도는 낮다. 학교에 진입하기까지 사회에서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나로서는 학교가 제일 쉬운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아이들 뿐 아니라 교사에게도 가기 싫은 곳이다. 세상 어딘가엔 학교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변태들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그 변태는 아니다. 약 3개월의 방학과 간간히 재량휴업일이 주어지고 수업 후 조퇴가 자유로운 학교임에도 출근하기 싫은 건 왜일까? 우리 엄마말대로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텐데 말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마시는 커피가 좋았다. 여유롭게 차려먹는 과일이 좋았다. 급식 대신 빵이나 피자, 치킨, 컵라면 등 그때그때 먹고 싶은 걸 먹는 자유가 있는 점심이 좋았다. 학생들과 함께 급식을 먹어야 하는 나로서는 메뉴 선택의 자유도 없지만 급식을 안 먹을 자유조차 없기에 "자유가 있는 점심"이 정말 달콤했다. 밤늦게까지 차 마시며 책을 읽는 저녁도 좋았다. 이것들은 모두 방학 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방학 때 누리는 삶은 내가 꿈꾸는 삶이기도 하다.
돈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삶. 새벽 6시에 일어나 샤워하지 않아도 되는 삶. 하루 정도는 샤워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하루만 안 한 건 아니다. 최장 4일까지도 안 해보았다.) 자유롭게 책을 읽고 취미 삼아 글을 쓰는 삶. 내가 좋아하는 나의 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만 둘러싸여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삶. 물론 이런 삶은 퇴직 전까지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걸 안다. 어쩌면 퇴직 이후에도 이런 삶을 누리는 사람은 소수에 가까울지 모른다. 이런 꿈같은 삶을 일 년에 3개월가량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직업이라면 괜찮은 직업일지도 모른다. 목숨 바쳐 충성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출근하기 싫은 마음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집중은 전혀 되지 않지만 임용강의를 틈틈이 듣긴 했다. 하지만 강의를 들으면서도 여전히 나는 임용에 확신 없다. 합격해야 할 이유는 참 많은데, 최소한 방학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합격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가지 않을까. 마치 조건은 좋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는 선남(선으로 만난 남자) 같달까. 임용 강의를 듣고 있으면 공황발작이 올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진다.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고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과의 갈등. 먹고사니즘과 가슴이 뛰는 삶과의 갈등. 평소에 자신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되도록 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이고, 진정으로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
캄보디아에 가서 살고 싶니? 미국에 가서 살고 싶니? 캐나다에 가서 살고 싶니? 말해봐, 너의 소원대로 해줄게. 그래도 나는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떠나고는 싶지만, 이곳에 구축한 아름다운 나의 세계를 쉽게 저버릴 수 없다고. 나와 한 정거장의 거리에 사는 부모님, 볶은 김치가 먹고 싶다는 말에 운동하는 길에 들렸다며 볶은 김치를 건네고 현관 앞에 잔뜩 쌓인 택배 상자를 버려주고 가는 엄마. 아름다운 모국어로 써진 책들, 여름이면 차 익는 향기를 풍기는 보이차들, 내 취향에 꼭인 찻잔들, 가죽커버가 씌어진 노트들, 한 해 한 해 정이 깊어져가는 나의 하나뿐인 조카. 이것들을 모두 이곳에 놓고 나만 훌쩍 떠날 수는 없다고. 그런데 떠나고 싶다고. 떠나더라도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교사뿐이기에 어차피 교사를 할 거면 이미 한국에서 하고 있는데 왜 떠나야 하냐는 도돌이표. 미국이든, 캐나다든, 결국 내가 있을 자리는 학교이고 특수교사이다.
이러한 생각들로 나의 겨울방학은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캄보디아에 있던 13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집안에서만 지냈다. 캄보디아의 한국학교에 이력서를 제출했던 경험은 내가 비록 한국에 남기로 했을지라도, 내 삶에 작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나는 언제나 궁금했다. 세상 어느 곳으로도 날아갈 수 있으면서 새는 왜 항상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그러다가 문득 나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새와 나>, 하룬 야히아
나는 방학 동안 캄보디아를 다녀왔고, 방학 내내 캄보디아를 생각했고, 잘생긴 캄보디아 가이드를 생각했다. 캄보디아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특수교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영어공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한국에서의 나의 삶이 지루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날마다 호주나 캐나다, 미국 혹은 캄보디아나 태국을 그리워하며 한국에서 지내다가 방학 때에만 그곳을 여행하며 사는 삶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아직 겨울방학이 채 끝나지 않은 며칠 전에, 나는 여름방학에 있을 여행 계획을 세웠다. 23일의 여름방학 중 20일을 여행으로 보낼 계획이다. 캄보디아의 프놈펜과 씨엠립에서 2주를 보내고 육로로 태국의 치앙마이로 넘어와 그곳에서 1주를 보내려고 한다.
나도 내가 어디에 있게 될지 모른다. 나도 새처럼, 세상 어느 곳으로도 날아갈 수 있기에.
어쩌면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지내다가 방학 때에만 한국에 오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