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4일 토요일 오후 4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 나는 국회 앞에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촛불을 들고 서 있었다. 내가 성인이 된 이후로 세 번째 맞이하는 대통령 탄핵이지만, 촛불을 들고 국회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한동훈이 누군지도 몰랐을 만큼 정치에 특별한 관심도 없고, 평소에 뉴스도 잘 안 보는 사람이다. 선거철이 되면 투표에 참여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정치 활동을 한 것도 없거니와 하고 싶지도 않고 정치를 주제로 토론이나 토의 따위 역시 하고 싶지 않다. 특정 정치인을 비난하며 욕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나였지만, 감히 민주주의를 건드리다니 참을 수 없었다. 우리의 앞 세대가 피와 눈물로 투쟁해서 얻어낸 민주주의는 건드리면 안 되는 성역인 것이다. 그 성역을 감히 비상계엄이라는 이름으로 짓밟고 유린하였다.
그리고 2024년 12월 14일 토요일은 부당한 교육 시스템에 의해 순직하신 고 김동욱 특수교사(인천 학산초)의 추모제가 예정되어 있던 날이기도 했다. 김동욱 선생님 추모제도 국회 앞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탄핵 시위로 인해 이틀 전에 취소가 되었다. 죽어서도 관심받지 못하고 다른 이슈에 묻혀가는 모습이 마치 우리 특수교사들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것 같아 마음아 아팠다. 원래 그날 나는 예술의 전당에서 고흐의 전시회를 관람한 후, 특수교사 추모제에 참석하고 이후에 촛불집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추모제가 취소되는 바람에 고흐 전시회는 다음으로 미루고 일찌감치 국회로 향했다. 특수교사의 죽음이 애석하게 묻혀버린 분노까지 얹었다.
국회의사당 역에 내리고 보니, 일찍부터 수많은 시민들이 몰려있었다. 가족, 커플, 친구끼리 응원봉과 태극기를 들고 모여 앉아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마치 신나는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피켓과 핫팩, 따뜻한 차를 나누어 주는 모습이 마치 축제 같기도 했다. 아니, 축제였다. 부당한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을 탄핵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지켜내려는 신명 나는 축제. 우리는 모두 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쳤다. 탄핵소추안 투표가 시작되고, 결과가 나왔을 때 그 현장의 분위기란. 43살이나 먹은 나도 팔짝팔짝 뛰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탄핵이 가결됨으로써 현장의 분위기는 더 달아올라 신나게 뛰어오르며 노래를 불렀다. 이렇게 깜찍하고 야무진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대통령답지 않은 대통령을 두 번이나 탄핵시킨 나라. 불의를 용서하지 않는 나라. 나라가 어려울 때 발 벗고 나서는 나라. 민주주의를 일구어내고 성장시키고 지켜내는 나라. 나는 나의 조국이 진심으로 자랑스럽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 밤새 내린 눈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새로운 세상을 축복하듯. 흐린 하늘, 눈발이 날렸다. 지난 토요일 오후의 일들이 꿈만 같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소파 위에서 브런치를 먹는 평온한 일상을 맞이했다. 결코 당연하지 않은 이 평온한 일요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내가 죽기 전까지 다시 촛불 들고 국회에 갈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촛불을 들어야 할 상황이 생긴다면 그때도 기꺼이 나는 다시 촛불을 들고나가리라. 아직도 그날 외치던 구호가 귀에 쟁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