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살에 처음으로 소파를 장만하였다. 부모님 집에서 지내던 시절은 제외하고 처음 살던 집은 8평, 두 번째 살던 집은 6평이었으므로 소파를 둘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소파를 둘 공간이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책과 차와 찻잔들이 제법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터라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 13평인 세 번째 집에 이사 오면서 비로소 3인용 소파를 들이게 되었다. 인조가죽으로 만든, 30만 원 미만의 저렴한 소파이지만 소파를 들임으로써 나의 휴식이 더 온전해지고 안락해졌다. 소파가 없을 때는 침대에 누워 있거나 딱딱한 식탁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휴식의 전부였는데 소파로 인해 나는 푹신하게 기대거나 비스듬히 누울 수 있었고 이것이 휴식의 질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을 알았다. 침대에서 눕는 것과 소파에서 눕는 것은 엄연히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소파에 앉거나 기대서 과일을 먹고 차를 마시고 유튜브를 시청한다. 때론 멍하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쿠션에 기대어 책을 읽기도 하고 텔레비전을 보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소파에 앉아 레몬수를 마시는 시간과 퇴근 후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 허브티 마시는 시간을 좋아한다. 소파는 잠자거나 음식을 먹거나 책을 읽기엔 불편한 장소가 맞다. 잠은 침대에서 잘 때가, 음식은 식탁에서 먹을 때가, 책은 책상에서 읽을 때가 가장 편하다. 하지만 소파에서 이루어지는 잠과 식사와 독서는 원래의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원래의 장소에서라면 제대로 각 잡고 긴장한 채 잘 해내야 할 것 같다라면 소파에서는 해도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안 오면 초조해지는데 소파에 웅크린 채 잠깐 눈을 붙이는 건 굳이 잠이 오지 않아도 별 부담이 없다. 책상 앞에 앉았는데 집중이 되지 않으면 짜증이 나지만 소파 쿠션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읽는 책은 집중이 되면 되는대로, 집중이 안되면 안 되는 대로 그 행위 자체가 치유가 된다. 식탁에서 먹는 음식은 거르면 안 될 식사처럼 느껴지지만 소파에서 먹는 음식들은 안 먹어도 상관없고 먹으면 더 좋은 맛있는 위로가 된다.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재생시켜 두고 소파 옆에는 핸드크림과 립밤을 준비해 두고 과일이나 견과류 같은 간식을 먹으며 푹신한 쿠션에 기대 따뜻한 무릎담요를 덮은 채 책 읽는 시간. 은은하고 아늑한 조명 하나만 켠 채, 빛깔이 예쁜 차나 따뜻한 차와 함께라면 더없이 좋을 소파 위의 시간들. 무의미한 행위들을 하며 조금은 느슨하고 나른하게 나를 회복하고 치유하는 소파 위의 시간들.
소파,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동안 소파 없이 어떻게 살았나 모르겠다.
(소파를 사니 소파에 둘 쿠션을 사고, 소파 옆에 둘 스툴을 사고, 소파에서 책 읽을 때 쓸 장스탠드를 사고, 소파에 깔아 둘 러그를 샀다. 저렴한 소파를 샀어도 결국 저렴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