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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먹을 시간입니다.

하지만 약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by 방구석도인

저는 약물치료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그랬기에 조울증인 걸 알았을 때 한편으로 기쁘기까지 했습니다. 이 모든 게 다 조울증 탓이었다면, 약만 먹으면 이 모든 문제들이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약만 먹으면 우울한 감정도 사라지고, 이유 없이 들떠서 금방 사랑에 빠지거나 쓸데없는 사람들 만나러 모임을 다니는 일도 없어지고, 일과 공부에 집중이 잘 될 줄 알았습니다. 과소비도 줄어들고 식탐도 줄어들 줄 알았습니다. 식탐이 줄어들면 살도 쭉쭉 빠질 줄 알았습니다. 이 모든 기대가 망상이었을까요?


물론 약이 아무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적금을 시작했고, 중독자처럼 마시던 맥주도 안 마시고, 커피도 하루에 한 잔 마실까 말까입니다. 배가 터질 때까지 먹어대던 폭식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병원에 가기로 결정한 이유가 "임용고시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였다는 걸 생각해 보면 아직 제가 원하는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조울증 약을 먹고 ADHD 약을 먹어도 여전히 저는 공부가 하기 싫고 집중이 안되고 머릿속에는 불필요한 딴생각들이 가득합니다. 살도 생각만큼 쭉쭉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우울감과 무기력이 찾아옵니다.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는 이불을 박차고 샤워하러 가기까지가 너무 힘듭니다. 더 자고 싶어요.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공부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여덟 시에 잠들었는데도 제가 일어나야 하는 오전 6시까지 계속 졸려서 일찍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제 마음을 더없이 무겁고 어둡게 만듭니다. 1월에 캄보디아에 가려고 비행기를 예약해 두었기에,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아마 여행을 좋아하고 많이 다니는 분들은 다 같은 마음일 거예요. 운이 좋아서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았을 뿐, 자신에게 언제 닥쳐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는 걸. 죽음이 뭔지, 운명이 뭔지, 삶이 뭔지,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사건입니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죽을 때는 어떤 마음일까요? 저의 마음은 끊임없이 죽음을 향해 내달립니다. 자꾸 여객기 참사 관련 뉴스를 보게 되고요.


결국 약보다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중요한가 봅니다. 약물이 어느 정도 보조의 역할은 해줄 수 있겠지만 결국 제 인생의 운전대를 잡고 운전하는 것은 저 자신입니다. 약물은 엔진오일 정도일까요? 무수히 일어나는 상념 속에서 제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제가 가고자 했던 그 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주는 상담자가 되고 싶던 그 초심. 제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임용고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입니다. 그동안 약을 믿고 너무 안일했던 것 같습니다. 약이 저의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 믿고 너무 방관했습니다.


다시 의지를 다잡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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