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넷째 날의 기록(2025.1.16. 목.)
오늘은 투어가 없는 날이다. 알람을 맞춰 놓지 않고 눈 떠지는 대로 하루를 시작했다. 어제 앙코르와트 및 핵심 사원 투어가 힘들었는지, 일찍 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깨지 않고 푹 잤다. 일어나니 온몸이 뻑적지근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레몬즙을 생수에 타 마시고 스테레칭을 한 후 샤워를 하고 문밖을 나섰다.
어제 숙소 앞 마트에서 산 과일을 가지고 숙소 로비로 내려가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아침 식사로 대신했다. 작가 코스프레가 하고 싶어 챙겨 온 노트북을 켜 여행 일정을 정리해 블로그와 브런치에 올리고, 밀린 메모를 하며 오전을 보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숙소 인근으로 무작정 나가 보았다. 가게 입구에 행잉 화분이 잔뜩 매달려 있고 디시디아와 틸란드시아가 무성하게 늘어진 가게가 눈길을 끌어 들어갔다. 서양인 가족 한 팀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아 쌀국수와 코코넛 주스를 시켰다. 아무런 기대도, 계획도 없이 들어간 가게였는데 맛있어서 흐뭇했다. 숙소 조식을 신청하지 않은 터라, 브런치 먹으러 다시 방문하고 싶은 가게였다.
점심 식사 후에 다시 숙소로 돌아와 로비의 긴 의자에 누워 책을 읽었다. 사실 책을 네 권 챙기면서 여행 중에 이 책을 다 읽을 시간이 날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한 권을 다 읽고 지금 두 번째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로비의 의자와 테이블 곳곳에는 나처럼 책을 읽거나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하거나 낮잠을 자거나 하며 나른하고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는 이방인들이 있었다. 이방인과 이국어 틈에서 평화로우면서도 고독했다.
앉아 있거나 누워만 있었는데도 배가 고파져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오늘은 "펍 스트리트"를 가보기로 마음먹고 숙소 앞의 툭툭이를 잡아 탔다. 펍들이 양 옆으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어디로 가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입구 근처의 가게로 들어가 칵테일과 튀김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캄보디아 수프에 모차렐라치즈를 얹은 메뉴 한 개와 앙코르 맥주 두 잔을 더 시켜 먹었다.
알코올 기운이 온몸에 감돌고 뺨은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7시간을 비행해 이곳에 왔는데, 한국인과 한국어가 희귀한 이곳에 앉아 있는데, 어째서 나의 삶은 여기서도 매한가지인 걸까. 여전히 나는 혼자고, 외롭고, 고독하고,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는다.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 멀리 떠나왔는데 이곳에서도 일상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고, 샤워하기 귀찮아서 침대에서 뭉기적거리고, 지도를 켜고 길을 찾는 게 귀찮아 툭툭이를 탔다.
돌아가는 길에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있길래 사고 싶었던 불상과 은반지, 코끼리 바지와 셔츠를 샀다. 남들은 싸게 잘만 사던데 어쩐지 나는 비싸게 바가지를 쓰고 산 것 같아 괜히 찜찜했다. 나는 캄보디아에서도 야무지지 못한 국제적 호구였다. 돌아가는 길에 혹시 길을 잃을까 두려워 또 툭툭이를 탔는데, 나중에 다시 오려고 길을 잘 살펴보니 그냥 직진만 하면 되는 가까운 거리였다. 숙소에서 5분가량 걸으면 도착할 수 있어 보였다. 또 바보처럼 쓸데없이 달러를 낭비했다. 캄보디아에서도 나의 멍청력은 계속되고 있다.
도망치고 싶어 여행온건 아니지만, 달라지고 싶어 여행온건 아니지만,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나의 일상이 참으로 지겹다.
어쩌면 이게 삶의 전부 인지도 모른다.
출구는 없다.
애초에 삶은 입구만 있는 건지도 모른다.
출구 없는 삶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