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간의 나약한 위대함이란.

여행 셋째 날의 기록(2025.1.15. 수.)

by 방구석도인

드디어 앙코르와트를 방문하는 날이었다. 원래는 한국어 가이드와 함께하는 투어를 신청했는데 모객 미달로 취소가 되어 급하게 영어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다. 가격은 한국어 가이드의 3분의 1 가격인데 가이드가 친절해서 만족스러웠다. 생수와 물수건도 상시 준비해 주고, 사진도 잘 찍어 주었다.


앙코르와트에 도착해 입구에서 셀카봉으로 인증숏을 찍으려는데 한 청년이 찍어 주겠다며 영어로 말을 걸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길래 코리아라고 하자 자기도 한국인이라며 우린 서로 반갑다고 악수를 나눴다. 그가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미처 한국인인 줄 몰랐다. 나야 워낙에 차이니즈, 재패니즈 등등 국적을 알아보기 힘든 외모다. 우리가 여행 내내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대화를 나누자 가이드가 우릴 보고 웃으며 베스트 프렌드라고 놀렸다.


착하고 반듯한 청년이었다. 초면에 나이와 직업부터 묻고 시작해야 대화가 되는 우리 세대와는 다르게 그런 질문 전혀 없이 유쾌하게 대화를 이끌었다. 여행 일정이 길었던 그에게 직업이 혹시 방학 있는 일이냐고(교사),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오히려 꼰대인 내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앙코르와트는 3만여 명의 인력이 40년간 공사에 완성시킨 힌두교 사원이다. 지금은 불교 사원이 되었다. 당시 크메르족은 왕족이 죽으면 그가 믿던 신과 합일한다는 신앙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믿던 신과의 합일을 위하여 수많은 인력과 시간을 동원하여 건립된 사원이다. 당시 그들은 그들의 후손이 그 사원의 관광 산업으로 먹고 살게 될 줄은 몰랐겠지. 그들이 정말로 신과의 합일을 이루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후손들이 돈과의 합일을 이룬 것만은 확실하다.


사람이 건축했다고는 믿기 힘든 거대한 규모와 정교한 아름다움. 직접 땀을 흘리며 돌을 나르고 쌓아 올린 사람들은 신앙심이 아니라 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서 노동에 임했겠지만, 억지 춘향이들이 만든 건축물치고는 말할 수 없이 위대하고 아름답고 장엄하다. 끝없는 노동을 이겨내고 최상을 결과물을 만들어낸 인간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다. 진정 신과 합일된 자는 왕족이 아니라 돌을 쌓아 올린 노동자들이 아닐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노동과 시간을 견뎌낸 그들 자체가 이미 신이다.


앙코르와트는, 사후를 두려워하는 인간의 나약함이 만들어낸 미신적 욕망의 해프닝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인간은 그 해프닝을 위대함과 아름다움과 숭고함으로 승화시켰다. 왕족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들이 사후에 갈 사원은 세계문화유산이 되었고, 캄보디아 인들의 관광 산업이 되었으며,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관광지이자 유적지가 되었다.


생각보다 인간은 위대하다.


나도, 당신도, 우리의 생각보다 좀 더 위대할지 모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생각보다 사람들은 친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