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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사람들은 친절하다.

여행 둘째 날의 기록(2025.1.14. 화.)

by 방구석도인

오늘의 일정은 늦은 오후에 칵테일 클래스에 참여하는 것, 하나뿐이었다. 여유롭게 늦잠을 자려했으나 출근하던 습관인지, 잠자리가 바뀌어서 인지 눈이 일찍 떠졌다. 침대에서 뒤척이다 일어나 샤워를 하고 슬리퍼를 사러 마트에 갔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실내용 슬리퍼가 없어서 매우 불편했다. 호스텔 앞에 편의점과 마트, 식당 등의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졌다고 들었는데 아직 낯설어서인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둘러보다 눈에 띄는 마트에 들어갔다.


전날 기내에서 신라면 하나 먹은 게 전부인지라 배가 많이 고팠다. 마트와 카페가 같이 있어서 브런치를 먼저 먹어야겠다 싶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치즈쿠키를 주문했다. 이게 캄보디아에서 먹은 첫 끼니였다.

아메리카노, 치즈케이크.

배를 채우고 둘러보니 슬리퍼는 팔지 않는 작은 마트여서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숙소에 들어가려고 보니 맞은편에 신발가게와 큰 마트가 보여서 신발가게로 들어갔다. 중고 신발을 팔고 있었는데 내가 빨간 슬리퍼를 들고 주인아주머니에게 얼마냐고 묻자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18달러를 불렀다. 깎아 달라고 하자 12달러를 불렀다. 이것도 매우 비싸게 느껴졌지만 깍지 못하는 성격이라 12달러를 지불하고 떨떠름하게 나왔다.


숙소 로비에서 외국의 젊은이들이 선탠도 하고 노트북도 하며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도 책을 한 권 들고 나와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러다 배가 고파져 팟타이와 카페라테를 주문해서 먹었다. 방에 들어와 책을 더 읽으며 시간을 보낸 후, 칵테일 클래스에 참여할 시간이라 로비에 나와 픽업 차량이 오길 기다렸다.

책, 팟타이, 라테

아무리 기다려도 픽업을 오지 않아 연락해 보니 픽업은 안 해준다며 찾아오라고 지도를 보내주었다. 픽업과 샌딩을 해준다는 설명과 달라서 기분이 나빴지만 걸어서 2분 거리라 그냥 걸어서 갔다. 걸어가며 보니 그쪽이 핫플이었다. 음식점과 펍이 즐비했다. 투어 일정이 없는 날에는 이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면 좋을 것 같았다.


칵테일 클래스는 여러 명이 모인 상태에서 단체로 진행되는 것을 생각했는데 도착해 보니, 나밖에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한 남자가 나를 창고로 데려가더니 수많은 술병들을 보여주며 몇 가지를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장소를 옮겨 테이블이 있는 소파에 앉게 한 후, 물과 과자 잼을 주었다. 그 후, 칵테일을 만드는 통에 여러 재료들을 주며 섞게 했다.

나는 클래스가 진행되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저 이상한 빛깔의 액체들은 무엇일까? 혹시 저 안에 마약이나 수면제 같은 것을 넣어 둔 것은 아닐까? 픽업과 샌딩을 해준다더니 왜 안 해준 걸까?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고 게스트가 나 혼자인 게 영 찜찜했다. 그렇다고 만든 칵테일을 안 마실 수도 없고 수업을 진행해 주는 호스트 남자와 "치얼스"를 외치며 마시긴 했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자고 다짐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칵테일을 만들고 나니 다른 게스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년의 부부로 보이는 두 커플이 들어왔고 각각의 팀마다 호스트가 붙었다. 신청한 팀별로 진행되는 클래스였으며, 나는 혼자 신청했으니 일대일로 진행된 것이었다. 칵테일 재료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혼자 용썼던 게 허탈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 수업을 진행해 준 호스트는 젊은 청년이었고, 영어를 못하는 나를 위해 번역기를 돌려가며 애써줬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검둥개를 만났다. 지금은 하늘의 별이 된, 언니가 키우던 강아지 까무와 닮아서 쓰다듬어 주었다. 눈곱이 가득 끼고 양쪽 귀에는 피부병에 걸려 있었다. 검둥개는 사람의 손길이 그리웠는지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생각보다, 세상은 아름답고 사람들은 친절하며 나는 아직 젊다.


그래서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 하니 일찍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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