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첫째 날의 기록(25.1.13. 월)
11시 5분 비행이었다. 9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새벽 네 시에 일어났다. 너무 일찍 가는 건가 싶었지만 막상 수속을 마치고 비행하기까지 딱 맞아떨어지는 걸 보면 비행 세 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하는 게 역시 정석이다. 캄보디아의 날씨를 고려해 여름용 긴 청바지와 반팔티를 입고 두껍지 않은 코트를 입고 나섰는데 한국의 1월 새벽 추위는 기세가 대단했다. 너무나 추웠다.
자가용으로 신창역까지 가서 파킹한 후, 1호선을 타고 천안아산역까지 간 후, KTX를 타고 광명역까지 가서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광명역에서, 따뜻한 나라를 가는지 맨발에 쪼리를 신은 채 패딩 점퍼를 걸친 젊은 여자를 보았는데 너무 추워 보였다. 추운 걸 떠나 동상에는 걸리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어쩌자고 이 맹추위에 맨다리로 다니는지 참.
광명역 풍경을 보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손에 핸드폰을 든 채 핸드폰을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거나 서 있는 풍경이 참으로 괴기했다. 이동하는 짧은 순간조차 홀로 가만히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핸드폰에서 눈을 뗄 줄 모르니 앞으로 사람들이 얼마나 더 외로워 질지, 얼마나 더 자극과 도파민을 찾아 헤맬지 염려되었다.
시작부터 날 당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으니 KTX의 연착이었다. 열차가 연착되면 공항버스를 못 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광명역에 도착해서 빠른 걸음으로 정류장에 가니 출발 1분을 앞두고 있었다. 나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승객도 있었는데 기사님이 기다려 주어서 모두 탈 수 있었다. 인천공항은 5년 만의 재방문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나와 세 번의 여행을 함께 했던 친구는 그 새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나만 홀로 인천공항에 서 있다.
일본에서 트래블로그 카드를 주로 사용한 것을 생각하고 카드에만 달러를 충전하고 환전 신청은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캄보디아에서 카드 결제 되는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인터넷 검색하다 알게 되어 이틀 전에 부랴부랴 환전지갑을 신청했다. 환전을 받고 짐을 부치고 게이트로 이동 후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이 모든 과정이 큰 기다림이나 지연 없이 진행되어 기분이 좋았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에, 그리고 착륙하는 순간에 제주항공 사건이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에게도 언제든 그런 사고가 닥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삶에 대한 설렘과 간절함이 느껴져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간절히 땅을 밝고 싶었다. 나는 다시 나의 가족들을 만나고 싶었다. 내가 떠나기 전날 밤, 아빠는 내게 전화를 걸었다. 생전 그런 양반이 아닌데 아마 아빠도 나와 같은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들도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들도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그들도 얼마나 가족들을 만나고 싶었을까. 그들도 얼마나 땅을 밟고 싶었을까. 무사히 캄보디아의 땅을 밟은 나는 마음속으로 대상 모를 누군가에게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그리고 얼굴도 이름도 모를 기장님께 감사와 존경을 보냈다.
캄보디아는 비자 발급이 필요한 나라이고 비용은 30달러다. 씨엠립 공항에 도착해 공항 밖으로 나오면 이동서비스를 안내하는 부스가 있는데 택시와 버스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나는 비용을 아끼고자 8달러를 내고 버스를 이용하였다. 버스를 타면 '펍스트릿'에 내려 주는데 이곳에 많은 툭툭이(오토바이에 수레를 매단 형태)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다. 1달러를 내면 숙소까지 데려다준다.
내가 11박을 머물 숙소는 "럽 디 호스텔'로, 모든 기사들이 럽디는 다 알고 있어서 택시나 툭툭이 이용이 편했다는 인터넷 후기를 보고 선택하였다. 아무래도 호스텔이다 보니 소음은 감수해야 했다. 도착하니 젊은 이국 남녀들이 자유롭고 호탕하게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새벽까지 꽤 시끄러웠다. 잠 좀 잘 것이지 젊은것들은 졸리지도 않나 보다.
캄보디아는 한국보다 2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나는 오늘 26시간을 산 셈이다.
나도 어느 하루는 자유분방한 젊은 외국인들 틈에서 맥주 한 잔 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