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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y 1.

시간의 무상함이여.

by 방구석도인

캄보디아로 향하는 항공권을 예매한 것은 작년 11월이었다. 아직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그때만 해도 한낮이면 햇살과 온기가 따뜻했다. 동료에게 여행 계획을 말하며 빨리 가고 싶다고, 빨리 겨울 방학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투어를 계획하고 셀카봉을 구매하던 그때만 해도 2025년 1월 13일이 먼 미래처럼 느껴졌다. 여행에 대한 생각은 멀찍이 미뤄둔 채 학생들과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동료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베트남으로 여행을 간다. 우리는 각자의 여행을 기다리며, 일하다 문득문득 여행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한 주, 한 주가 지나가고 달이 바뀔 때마다 시간 참 빨리 간다며, 이러다 조만간 우리 여행지에 가 있는 거 아니냐는 말을 했다. 여행지에서는 시간이 더 빨리 흐르니 이렇게 떠나기를 기다리는 지금이 더 행복한 거라는 말도 했다. 지칠 때는 빨리 방학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그런데 벌써 내일이 출국일이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꼬마가 어느덧 마흔네 살이 되었듯, 빨리 여행 가고 싶었던 나는 이제 짐을 꾸려야 할 시간이 왔다. 결코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내어 떠나는 여행인데, 개학하면 당분간 여행은 힘들 텐데, 이 귀한 여행의 시간들이 순식간에 흘러가 버릴까 벌써부터 슬퍼진다. 부여잡고 싶을 순간들. 기억하고 싶을 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모든 것이 지나가고 기억에서도 잊히겠지. 그리고 설렘을 잊은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겠지. 그 설렘을 느끼고 싶어 다시 여행을 떠나겠지.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쉬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나는 곧 짐을 꾸릴 것이고, 내일 아침이 올 것이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릴 것이고 어느덧 캄보디아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빠른 시간의 속도가 나는 가끔 무섭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흔한 격언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모든 것이 휙휙 지나가고 있다. (물론 모든 것이 지나가는 와중에 지나가지 않는 것도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는 나의 뱃살이다. 삼십 년째 안 지나가고 있다. )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또한 지나가 버릴 것을 계속 붙잡고 괴로워할 것인지. 이 또한 지나가 버릴 순간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지나가 버린 순간들을 언제까지고 한없이 소환하고 추억할 것인지.


아직은 떠나지 않았다. 아직은 짐을 싸지 않았다. 아직은 나의 집이다. 아직은 파자마를 입은 채, 나의 집에서 음악을 들으며 디카페인 커피를 내리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마음은 벌써 떠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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