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젊음이 시시각각 빠져나가고 있다.
나는 지금 실시간으로 늙어가는 중이고 죽어가는 중이다. 매일 아침, 거울을 마주할 때마다 하루만큼의 생명력과 젊음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본다. 새어 나가는 생명과 젊음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이다. 그저 멍하게 바라만 본다. 곱고 우아하게 늙겠다는 다짐은 생명력 넘치는 젊음 앞에서 비참하기만 할 뿐이다. 곱고 우아한 늙음보다는 거칠고 투박한 젊음이 백만 배쯤은 더 나을 것이다. 늙음과 젊음은 애초에 비교 불가다. 늙음의 완패다.
촉촉하고 보드랍던 피부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거친 각질과 주름과 잡티가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샴푸모델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윤기 나고 찰랑이던 머리카락은 흰머리가 늘고 잦은 새치 염색으로 푸석해졌다.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듣던 손은 코끼리 얼굴처럼 잔주름이 늘어났고 손가락 마디도 굵어지고 거칠어졌다. 유연하던 목과 팔은 돌덩이가 올라앉은 듯 매일이 무겁다.
아마 해외에 혼자 나가도 함께 맥주를 마시자는 외국인도, 무거운 캐리어를 대신 들어줄 외국인도 없겠지. 이방인들 눈에도 난 그저 중년의 여인일 뿐, 달콤한 썸씽이나 로맨스의 상대는 아니겠지. 여행지의 여행객들 대부분은 연인 혹은 가족끼리 함께 다닌다. 간혹 혼자 다니는 내 또래의 여행객이 있다고 해도 처음 보는 사람과 인사와 스몰톡을 나누기에는 우리 서로 너무 늙었다. 이제는 타인이 말 거는 것이 호기심과 관심이 아닌 귀찮음이 되어 버린 나이다. 아마 서로 제발 말 걸지 않기를 속으로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흔 네 살에 홀로 떠나는 캄보디아는 내게 어떤 의미일까. 방학이면 으레 가는 여행일 뿐이고 함께 갈 사람이 없어서 혼자 가는 것뿐이지만 의미를 한 번 부여해 볼까 한다.
방학마다 해외여행을 꼭 가기로 결심했는데 그 이유는 내가 늙어가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을 다니면 아무래도 걸을 일이 많은데 나이가 많아지면 힘들 것 같다. 또 소화력이 약해져 현지 음식을 먹기 힘들어질 수도 있고, 나의 부모처럼 대장암 수술이라도 받게 된다면 장의 길이가 짧아져 대변을 자주 봐야 하기 때문에 장거리 여행이 어려울 수 있다. 또 나이가 들면 방광염이나 요실금 등 배뇨기관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기타 다른 이유로 큰 수술이라도 받게 된다면 약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든가, 가리는 음식이 생긴다든가 하는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체온 조절이 어려워져 추위나 더위에 약하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인, 조금이라도 더 건강할 때인 지금을 놓치고 싶지가 않다.
내게 있어 여행은 지금의 생명력과 젊음을 즐기고 만끽하는 의식이다. 아직은 노안이 오지 않은 선명한 시력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아직은 관절염이 오지 않은 다리로 지구 위를 걸어 다니고, 아직은 소화가 잘 되는 위로 현지 음식과 맥주를 먹고 아직은 꼿꼿한 몸에 원피스를 걸치는 의식. 생명과 젊음을 즐기는 의식이자 떠나보내는 의식이다. 언젠가는 이 모든 것들을 더 이상 즐기지 못할 때가 올 것이다.
붙잡을 수 없는 것을 알지만 붙잡고 싶다.
그래서 여행을 간다.
여행을 다녀와서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바라보고 있을 나는, 여행을 다녀온 만큼 더 늙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