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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과 콘치즈 그리고 아이스크림.

정신과 상담 다섯 번째 기록(2025.3.4. 화.)

by 방구석도인

"몸이 돌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져요. 식욕도 비정상적으로 올라와서 많이 먹었고 실제로 체중도 3킬로그램이 늘었어요. 머리카락도 많이 빠지는 것 같고요. 저랑 같이 근무하는 실무원님한테 제 상태를 물어보고 객관도를 체크하는데, 실무원님 말로는 제가 다운되어 보인대요. 실무원님은 제 이전 모습이 더 보기 좋다고 했어요."

저의 말에 의사 선생님은 한숨을 쉬셨어요.


리튬을 한 알 먹다가 두 알로 늘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식욕이 폭발적으로 올라와 제어가 어려웠습니다. 짜장면과 탕수육, 짜장면과 깐풍기를 연속 이틀을 먹었지요. 아니 짜장면이 왜 이렇게 먹고 싶죠? 한동안 안 먹고 있던 음식인데요. 그리고 콘치즈는 왜 이렇게 맛있나요? 옥수수 통조림에 설탕과 마요네즈를 들이붓고 피자치즈를 듬뿍 올린 채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짓을 며칠을 했습니다. 아이스크림은 왜 또 맛있죠? 우리 집에 있는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야무지게 아이스크림을 퍼서 시리얼이나 냉동과일과 함께 먹으면 끝내 줍니다. 또 몇 날 며칠을 아이스크림을 퍼먹었습죠. 하도 먹어대니 나온 배가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더라고요. 소화가 되기도 전에 또 먹어대니 포만감이 며칠 째 지속되었습니다.


하필 채용신체검사서를 학교에 제출해야 하는 시기여서 공교롭게도 저의 몸무게를 교감선생님과 공유하게 되었지 뭐예요. 아유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입니다. 하하하 젠장입니다. 이렇게 미친 식욕이 올라온 이유는 필경 리튬 두 알 때문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의적 판단에 의해 리튬 한알을 빼고 먹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식욕은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이미 찐 살은 저절로 빠지지 않습니다. 빠져도 시원찮을 몸무게에서 더 늘다니 정말 스트레스가 태산처럼 쌓입니다.


몸은 마치 돌덩이를 매달아 놓은 듯 무겁게만 느껴졌어요. 살이 쪄서 몸이 무거운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야말로 팔다리에 추를 달아 놓은 채 끌고 다니는 느낌입니다. 그러다 보니 무기력이 올랑말랑 하더라고요. 저번에 한 알 먹던 아빌리파이를 반알로 줄였을 때 굉장히 무기력하고 식욕이 올랐다가, 다시 반알을 추가했을 때 무기력이 개선되고 식욕이 떨어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또 자의적 판단에 의해 전에 먹다 남은 아빌리파이를 추가해서 먹었습니다.


의사는 제게 리튬 두 알, 아빌리파이 한 알을 처방했지만 제가 임의로 리튬 한 알, 아빌리파이 한 알 반을 먹은 셈입니다. 그러다가 제가 분노폭발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배달의 민족을 통해 시킨 음식이 잘못 배달된 거예요. 이걸 처리하는 과정에서 직원이 상담 내용을 누락하는 실수를 했는데, 제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언성을 높였습니다. 사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날은 화가 올라오고 제어가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의사가 해 준 처방으로 돌아가 리튬 두 알, 아빌리파이 한 알을 먹었습니다. 제 맘대로 바꾸어 먹었다고 선생님께 혼날까 봐 걱정되기도 했고요.


그런데 저 반의사 다 되었나 봐요. 저의 증상을 들은 의사 선생님은 제게 리튬 한 알, 아빌리파이 2밀리로 용량을 조절해 주셨습니다. 제가 임의로 약을 조절한 대로 의사 선생님도 그렇게 처방했어요. 약물에 따른 저의 상태를 모니터링 잘하고 있고, 판단도 잘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들었습니다. 역시 제 몸은 제가 가장 잘 아는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이미 찐 살 3킬로 그램은 어쩌냐고요. 누가 책임져 주냐고요. 제가 의사 선생님께 식욕억제제 처방해 달라고 했더니 들은 체도 안 하십니다. 흥.


왜 이렇게 몸이 돌덩이처럼 무겁냐고 여쭈어보니 약물 부작용이라고 합니다. 약만 먹으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부작용으로 인해 약물 치료하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기분이 너무 뜨거나 가라앉지 않고 평온했습니다. 하지만 몸이 무거웠고, 체중이 늘고, 머리카락이 빠졌습니다. 다행히 저는 머리숱이 많아 좀 빠져봐야 티도 안 나지만 저도 나이가 있는지라 이러다 탈모 올까 봐 걱정됩니다.


다운된 저의 모습보다 이전의 제 모습이 더 좋다고, 일상 생활에 크게 지장 있는 거 아니면 약 안 먹으면 안 되냐고 말한 실무원님의 말이 계속 생각납니다. 사실 약을 먹고 크게 삶의 질이 향상된 건 잘 모르겠습니다. 습관처럼 먹던 술을 안 마신다는 정도? 약물치료가 득 보다 실이 더 많다면 중단하는 게 맞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조절한 약물은 제게 어떤 결과를 줄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만, 저도 조증 상태의 제 모습이 그립습니다.


캄보디아에 있을 때처럼, 많이 웃고, 많이 감동하고, 많이 이야기하던,

밝고 활기찬 저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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