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이렇게 살기로 했습니다.
얼마 전 지원했던 캄보디아의 프놈펜한국학교 교사 채용 서류 전형에,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많은 고민 끝에 면접 응시를 포기하고, 한국에 남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를 주저앉게 만든 가장 큰 이유는 "급여"입니다. 항공권도 제 돈으로, 이사도 제 돈으로, 집도 제 돈으로 마련해야 하고 무엇보다 급여 자체가 적었습니다. 한국 교사들이 받는 수당이 전부 지급되지 않기에 1년에 약 1200만 원이 마이너스 나겠더라고요. 2년이면 2400만 원이지요. 해외 나가서 외노자로 일하는데 돈을 모으기는커녕 마이너스가 나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올 1년만 더 다니면 졸업하는 대학원도 휴학하기 아까웠고요.
그래도 아마 제 나이가 열 살쯤 더 어렸더라면 1200만 원을 포기하고 과감히 떠났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노후준비를 해야 하는 나이인데 마이너스가 나면 만회가 어렵습니다. 제가 사주를 좀 맹신하는 편이라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면 사주를 보곤 합니다. 역술인이 그러더군요. 올해는 큰 도전이나 변화를 구하는 운은 아니라고요. 하지만 대운에 역마살이 들어있기는 하답니다. 그래서 자꾸 마음이 들뜰 거라네요.
캄보디아 여행 갔을 때 함께 술 마셨던 한국인 청년이 프놈펜에서 일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에게 카톡으로 물어봤습니다. 프놈펜에서 교사로 일할 기회가 생겼는데 급여가 적어서 고민이라니까, "급여가 적은데 굳이 해외 나갈 이유가 있나요?"라고 그가 답했습니다. 그 청년 말을 듣고 번뜩 정신이 차려졌습니다. 캄보디아의 여행이 너무 좋았다지만 단순히 그 감정 하나로 거주지와 근무지까지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게다가 역술인도 만약 제가 해외 나간다면 오래 못 있고 금방 돌아올 거라고 하니 맘 접었습니다.
기분조절제인 리튬을 한 알에서 두 알로 증량한 지 일주일이 되어 갑니다. 이제 들뜬 기분이 많이 내려왔습니다. 리튬 두 알이 아니었다면, 아마 저는 정말로 캄보디아로 떠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일주일 전만 해도 당장 캄보디아로 떠날 기세였으니까요. 돈이고 뭐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채용되면 무조건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조건 떠나고 싶었고, 캄보디아가 마냥 좋았습니다. 리튬 두 알 덕분에 다른 사람들의 조언이 귀에 들어오고, 현실적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일 년 남은 석사 과정, 채용절차를 생략하고 저를 재계약 해준 학교, 올해 임용 보기로 했던 계획, 한 호봉 올라갈 월급, 책장 가득 쌓여있는 보이차와 찻잔들, 제가 좋아하는 소파와 책들. 이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훌쩍 떠나기에는 아직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좋았던 캄보디아 여행의 여운에 휩쓸려 성급히 떠났다가는 정말 후회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알 수는 없지요. 어쩌면 캄보디아의 생활이 너무 행복했었을지도요.
떠날 생각에 한껏 부풀러 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은 저는 시무룩합니다. 변함없이 펼쳐져 있는 일상에 지루하고 숨이 막힙니다. 임용 강의를 들으려고 앉아 있으면 정말로 미쳐 버릴 것만 같습니다. 리튬 두 알을 먹기 시작한 이후로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물에 젖은 솜 같습니다. 순간순간 짙은 졸음이 온몸에 내려앉습니다. 일주일 전의 들뜨고 설레는 기분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소화도 잘 안되는지 식사를 두 끼만 먹어도 종일 배가 부르고 답답합니다. 저는 지금 몸도 마음도 가라앉고 처져있습니다. 조증일 때의 두근두근 내 인생은 어디로 갔을까요?
얼마 전, 미친 교사가 학교에서 제자를 죽였습니다. 말 그대로 미친 교사입니다. 이 미친 교사 때문에 모든 정신질환자들이 잠재적 살인자 취급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교사들을 대상으로 정신감정을 실시하는 법안을 마련하겠다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저는 특수교사라는 제 직업에 자부심이 있는 사랍입니다. 제가 특수교사라서 때로는 힘들고 억울한 일도 당하지만 그래도 저는, 제가 특수교사인 게 참 좋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저를 만나서 긍정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저는 줄곧 가르치는 일만 해와서 다른 일은 할 줄도 모릅니다. 만약 제가 정신질환을 지니고 치료 중이라는 이유로 교단에 설 수 없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날은 진짜로 제가 대한민국을 뜨는 날이 될 것입니다. 정신질환이 마치 세상 모든 살인의 원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몰고 가는 건 사건의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울증 치료를 받으며 저는 장애인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저의 이야기는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조울증'이라는 진단명이 마치 저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것처럼 세상은 저를 대하겠지요. 저는 조울증이니까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할 거예요. 감정이 오락가락하니 언젠가 분노나 짜증이 터질 거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리고 한없이 우울하게 지낼 거라고 생각하겠지요. 정신력과 의지가 약해서 이겨내지 못한 거라고 생각하겠지요. 그 편견이 얼마나 매섭고 차가운지를 잘 알기에 저는 가족들에게조차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저는 정신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44년째 잘 살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저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믿지는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