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는 월요일

에세이 주제: 내게 인생의 비결을 가르쳐준 사람

by mingD

계절이 겨울 한가운데에 있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 눈은 한동안 내릴 일 없다는 듯 긴 시간 멈출 줄을 모르고, 바람은 끌어 모아둔 거친 숨을 날카롭게 쏟아낸다. 입춘 때면 꼭 이렇게 겨울은 떠나기 전 미련을 다 털어버리려는 모양새다. 이번 입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과 작별할 때를 알리는 것 같아 반갑지만은 않다. 마치 월요일 아침에 울리는 알람 소리 같다.


겨울이 한창이라고 느껴질 즈음부턴 아쉬운 마음에 밤 산책의 시간을 늘리곤 한다. 5분도 못 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으니 채비를 단단히 한다. 무릎까지 오는 까만 패딩을 껴입고 모자까지 푹 뒤집어쓰고는 현관을 나선다. 유행이 한참 지나서 그런지 평소엔 영 손이 안 가는 옷인데, 엉덩이 솜이 푹 꺼진 것만 빼면 이만한 이불이 없다. 미끄러질 세라 조심조심 걸으면서도, 볕이 안 들어 홀로 얼어 있는 곳은 모르는 척 골라서 밟아본다. 새벽 같은 밤공기가 좋아 숨을 흠뻑 들이마신다. 어디선가 뜨듯한 붕어빵 냄새가 나는 듯하다. 코가 기분 좋게 시리다. 이 계절의 밤은 넉넉하여 서두르지 않아도 되니 마음은 어딘가 포근하다.

내가 겨울을 이리도 아끼는 건, 어쩌면 여름을 워낙 두려워하는 탓도 있을 거다. 더위보단 추위가 훨씬 견딜만하다. 나는 땀을 흘리느니 콧물을 흘리는 게 낫고, 끈적이며 머리칼이 목덜미에 늘러 붙느니 건조함에 거칠어지는 편이 낫다. 해가 늦게 지는 때보다, 밤이 일찍 시작되는 때에 더 생기가 돈다. 하다 하다 햇빛 알레르기도 갈수록 심해진다. 강렬한 태양이 몸에 갇혀버리는지, 살갗이 새빨개지면 참을 수 없이 간질거린다. 어쩌면 마음의 거부반응인지도 모르겠다. 여름을 데려오는 계절이라는 이유로, 이젠 별 잘못 없는 봄마저 달갑지 않다.

밀어내려 할수록 당겨지는 건지, 몇 해 전부턴 여름이 부쩍 이르게 찾아오는 듯했다. 그 많은 열기는 도대체 어디서 다 끌어와서 오래도록 작열할 수 있던 걸까. 찜통 속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거라곤 에어컨 찬바람으로 더위를 쫓아낸 것뿐이었다. 밀어낸 열기들이 한데 모여서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을 것만 같다. 기계들의 벌겋게 달아오른 뒷모습을 너무 외면해버렸던 걸까. 불현듯 이러다 겨울마저도 고장나는 건 아닐지 두려워진다. 당장 다음 겨울엔, 때가 되어도 하얀 눈이 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한번 내리기 시작하곤 영영 멈추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빚지는 줄도 모르고 여름에게서 너무 도망치려 했나 보다. 아, 그래서‘입춘’이 매번 강추위를 몰고 오는 걸까. 겨울이 곧 봄이라고, 그리고 그 봄은 곧 여름이고 이내 다시 겨울이 될 거라고. 그러니 소중하지 않은 계절은 없다고 말해주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9일간의 연휴를 끝내는 알람이 울린다. 2월 3일 월요일, 입춘이 작은 하루 속 시작의 아침으로 들어온다. 이 아침이 곧 오늘 하루가 되고, 하나의 계절이 될 터이다. 땅에서 불쑥 새싹이 움트듯이, 이불 밖으로 두 팔을 내밀어 기지개를 쫙 펴본다. 한동안 빈틈없던 암막 커튼을 열어젖히니 방 안이 깨어난다. 늘 두렵기만 했던 월요일이 봄이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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