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샌 자국

by mingD


우린 다 하나의 배관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여기 1325호인데요, 방금 화장실 환풍구로 물이 확 쏟아졌어요.”
두 달 전, 토요일 11시쯤이었다. 인터폰이 울린 건, 이 오피스텔 원룸에 이사 온 지 1년 5개월 만에 처음이었다. 1325호?... 여긴 1425호이니, 바로 밑에 집이었다. 나는 화장실 청소를 하다 전화를 받은 터라, 고무장갑을 낀 채로 얼어버렸다. 누수라니, 독립 6년 만에 처음 겪는 일종의 자연재해였다.
곧이어 경비아저씨가 찾아왔다. 그는 천장(1325호) 배관은 바닥(1425호) 책임 영역이니, 일단 집주인한테 연락하라고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한마디가 내 마음에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아, 그리고 아랫집 벽지에도 물이 샜으면 다 보상 청구할 수도 있어요.”


화장실 환풍구로 물이 샜다고 했으니, 방 벽지까지 젖은 상태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에이 설마, 이때다 싶어 벽지를 다 교체해 달라고 하면 어쩌나. 나는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검색만이 살 길이었다. ‘일반적인 경우’엔 위층 집주인이 수리비 및 보상에 필요한 전액을 부담한다고 적혀 있었다. 난 평소처럼 화장실 청소만 했으니 ‘일반적인 경우’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당당하고 침착하게, 집주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밑에 집 환풍구로 물이 샌다고 합니다(…)’
집주인은 별다른 질문 없이 일사천리로 수리일정을 잡아주었다.
‘내일 10시 수립 업체가 갈 거고, 저도 맞춰서 방문하겠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보내온 친절한 문자가 어딘가 선전포고처럼 들려서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걱정과 의심이 많아진 걸까. 나도 계산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대가 없이 타인을 돕는 사람을 선망했고, ‘지는 게 이기는 거’란 속담에 모든 지혜가 담겨있는 양 기꺼이 패자를 자처하곤 했었다. ‘호구’라 불려도 좋았을 시절이 분명 있었다. 성숙한 인격에게 불리는 칭호 같았다.
회사를 다닌 후로 ‘호구 공포증’이 조금씩 생겨났던 것 같다. 그곳에선, 성과로 인정받을 일을 골라서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지는 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거’였다. ‘호구’를 절대 호구라 부르지 않는 암묵적 룰도 있었다. 본인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말이다. 내 경우엔 알아차리기까지 2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봄날의 햇살 같은 선배를 찾긴 힘들었다. 나도 어느새 그 삭막함을 대물리고 있었다. 6년 동안 ‘손해 보지 않는 계산식’은 점점 정교해지고, 암산은 빨라졌다. 학창 시절 수학만큼은 늘 만점이었으니, 셈에 자신감도 붙었다. 손해 보지 않을 자신 말이다.
엄마에게도 나의 잔소리가 늘어갔다. 약아빠진 딸내미 눈엔 엄마는 계산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늘 식당에선 식사를 마친 후 접시와 수저를 한 곳에 모아 정리한다. 여행을 가면 호텔방 체크아웃을 하기 전에 이불 정리부터 화장실 청소까지 한다. 난 셈이 빨라질수록, 엄마의 그런 행동들을 점점 못마땅해했다. 밑지는 듯한 상황을 견디지 못해 펄쩍 뛰기도 했다. 내가 사회생활은 엄마보다 한 수 위라는 듯,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일장 연설도 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셈하지 않는 엄마를 보면 참 속상하고 답답했다.


다음 날 10시가 되자 수리 기사님이 우리 집으로 왔다. 그는 바로 샤워실로 들어갔다. 샤워기를 하수구 위에 올려 두고는 아래로 물을 세차게 쏘았다. 수도꼭지를 열어둔 채 그는 1325호로 내려갔다. 1시간 정도 흘렀을까. “이제 물 끄셔도 됩니다. 끝났어요.” 그는 노후되어 느슨해진 배관 결합부를 조여주었다고 했다. 1325호는 그저 위층 집의 배관을 수리하기 위해 자기 집 천장을 열어주었을 뿐이었다. 그 사이 우리 집주인은 수리비를 정산하고 갔다고 했다. 내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데굴데굴 굴리며 준비했던 무장을 해제시켰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아무 손해도 없다니 참 다행이었다.


그 다음주 주말 부모님 댁에 갔다. 난 무용담 늘어놓듯 전 주에 겪은 누수 사건을 엄마에게 들려주었다. 신기하게도, 엄마도 불과 몇 주전에 같은 일을 겪었다고 했다. 정반대라고 하는 게 맞을까.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쏟아졌었고 윗집인 303호에서 수리 기사를 보냈었다고 했다. 물은 화장실과 바로 붙어있는 내 방의 붙박이장까지 샜었다고 했다. 장 안을 말리느라 며칠 동안 선풍기를 틀어 놨다고도 했다.
“붙박이장에 물 샌 것도 윗집이 알아?” 머리로 셈을 하며, 엄마한테 물었다.
“거의 새지도 않았는데 뭐 하러 말하니.” 엄마의 대답은 뻔했다. 혹시 1325호도 그랬었던 걸까?
방에 가보니, 붙박이장 문 밖에까지 물이 새어 나와 벽지 가장자리에 손바닥만 한 얼룩이 있었다. 내가 그날 1425호에서 흘렸던 물이 여기 벽지에까지 스민 것 같았다.


윗집도 아랫집도 하나의 배관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매끈했던 배관도 세월이 흐르면 느슨해져 틈이 새기는 법. 우리 집에서 출발한 물이 그 틈으로 새서 아랫집에게 날벼락이 되기도 하고, 윗집에서 출발한 물도 그렇게 내 머리 위로 쏟아질 수 있지 않겠는가. 더구나 내가 흘린 물이 어디까지 내려가 어느 층에서 새어 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섞여버린 물에서 내가 흘린 양만큼만 골라내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과연 우리 사이 모든 관계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손해 보지 않겠다는 말은, 곧 단 한 방울의 물도 흘리지 않겠다는 말이다. 손해 계산 식에서, 받는 손해와 주는 피해는 그렇게 순환되고 있다. 딱 떨어지는 정답은 애초에 없었다. 조금씩 너그러워지는 법을 배워간다.

누수 사건 후로 인터폰은 울리지 않았다. 아침에 샤워를 할 때면, 물이 쪼르륵 흘러 들어가는 하수구 뚜껑 틈을 바라본다. 오늘도 무사히 이 물은 딴 길로 새지 않고 조용히 낙하하고 있다. 가끔 마른 천장을 바라본다. 저 위에서부터 떨어졌을 물은 어느 높이쯤 와 있는 것일까. 각자의 물이 어딘가에서 만나 섞여가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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