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사랑, 그리고 마지막 이별

제4장 지난 이야기들, 이름을 부르다.

by 장윤길

그는 순간 용기를 내어 “주변에 사시나 보죠?” 하고 말을 걸었고,

그녀는 “네” 하고 대답하고,

뒤이어 “개나리 아파트에 살아요.”라고 했다.

그리고 그도 “저는 동백 아파트에 삽니다.”라고 답했다.

그 두 아파트는 공원 건너편 대로를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아파트였다.


그는 그녀에게 “이곳에 자주 오시나 보죠?”라고 말하고 나서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벌써 얼마 동안이나 가까이서 그녀를 보아 왔는데,

그의 말이 너무 어처구니없는 질문인 것 같았다.

그녀는 “선생님도 매일 오시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주말과 휴일은 붐비어 오지 않고 평일은 매일 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녀도 주말이나 휴일은 가족과 같이 지네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즉, 그들 둘은 이미 오래전부터 평일에는 그 공원에 나왔다는 뜻이었고,

그가 그녀에게 관심을 가졌던 시간보다 더 이전에,

그녀도 이 공원을 나왔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이렇게 하여 그와 그녀는 서로의 말문을 트게 되었다.


그날의 대화들은 더 이상 기억이 되지 않는다.

기억될 만한 특별한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로는 책을 보며 그렇게 얼마간 시간을 같은 벤치에 앉아 같이 보내었다.

그는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가늠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자신의 책을 보는 척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아! 그녀도 나를 보고 있었구나,

하면서 속으로 감탄도 해 보고,

“나를 어떻게 보았을까?” 혼자 질문도 해 보았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은 흘러갔다.


얼마 후 그녀는 “저는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손자가 유치원 마칠 시간이라 데리러 가야 할 시간입니다” 하면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구나! 그래서 항상 이 시간이면 일어났었구나!

하면서 “예, 안녕히 가세요.”라고 대답하고,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 크지 않은 체구, 뒷모습이 가냘프게 느껴졌다.


혼자 남은 그는 그가 참 바보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많이 가슴 설레고 기다렸던 시간을

이렇게 허무하게 묻어버리는 것이 못내 서운했지만,

“또 내일이 있으니” 하는 기대감에,

그도 그녀가 떠난 후 얼마 되지 않아 벤치의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냘프고 하얀 피부는 왠지 어떤 애련함이 느껴졌다.

커다란 눈망울은 세상 모두가 그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수많은 질문과 혼자의 답변을 하며,

내일 다시 만나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하여야 할까,

생각하며 그 긴 하루를 혼자 보내고 있었다.


그러는 그에게는 지루함이란 것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 같았다.


다음날, 어제와 같이 아침부터 바쁘게 그는 시간을 보냈다.

“무슨 옷을 입을까?”

“머리 염색해야 할까?”

“미용실 같다 갈까?”

“아니 그냥 어제처럼 가지 뭐”,

수많은 생각과 초조함 속에서 그는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 도착한 그는 주위를 둘러보아도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걱정이 앞섰다.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어디 아픈 것 아닐까?”

이 무슨 해괴망측한 생각들을 하나 하면서,

대담해져 보려고 하지만

기다려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고,

두리번거리던 그의 시선도 앞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안녕하세요, 일찍 나오셨네요.

저도 오늘 딴 날보다 조금 일찍 나온 편인데요.” 하고,

뒤에서 누군가 하는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녀가 왔구나!” 하면서,

벌떡 일어나 하마터면

그녀를 와락 끌어안을 뻔했다.


그때 서야 그는 휴대폰의 시간을 보면서

자신이 평소보다 훨씬 일찍 나온 사실을 알았다.


“그러게요, 오늘은 제가 좀 일찍 나왔네요.” 하고,

서먹한 대답을 하고 “앉으세요.” 하면서

그의 손수건을 얼른 꺼내어 그의 옆자리를 훔쳐 주었다.


어째서 그런 행동이 나왔는지 그 자신도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아 왔던 연인처럼 행동하는

그의 자신을 보고 그도 깜짝 놀랐다.


그렇게 해서 그와 그녀는 한 벤치에 나란히 앉는 두 번째 날이 되었고,

그날 그가 생각하기로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생각했다.


혼자 공원에서 시간을 보낼 때는 긴 시간이었었는데,

그날 그 시간은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이 동네에 사신 지가 얼마나 되냐?,

언제부터 공원을 산책하였느냐?” 등,

그리고 자신들이 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날, 다시 한번 그가 놀라웠던 사실은,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책의 제목이었다.

다름 아닌 “열국지”, 그는 무척 당황하였고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그 책은 여자가 특히 노년의 여자가 읽기에는

너무 동떨어진 책인 것 같다고 질문하였다.

그의 손에는 그날 책이 없었다.


그리고 그도 예전에 “열국지”를 몇 차례 읽어보아서

대략 흐름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 책에 나오는 사건이나 영웅호걸의 이름들,

고사성어 등등,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그녀가 그 책을 읽는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의 답변은 이러했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 책을 남편이 죽고 난 다음 우연히 남편의 물건을 정리하다 찾은 책으로 소장하여 읽는지가

삼십 년을 훌쩍 넘었다고 하였다.

정말 그 책의 옆은 색 바랜 노란색이었고 커버는 꺼풀이 씌워져 있어 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남편과 일찍 결혼하여 두 딸을 낳았고, 큰 딸이 첫돌을 지나고 나서 해외 건설 현장으로 나갔고,

현장에서 사고로 죽었으며, 그 후 그녀는 열심히 살 수밖에 없었고,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때 그녀가 뜻밖에 대면한 책이 이 “열국지”였고 그 책의 내용이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철학을

그때 알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살면서 강인함이 필요할 때마다 이 책을 읽으며 강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녀의 직업은 간호사였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그렇게 하여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지금 살고 있다고 했다.


지금 두 딸은 모두 잘 성장하였고 결혼도 하여 그녀와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손자의 유치원 등, 하교 심부름은 그녀가 한다고 했다.


그도 그의 이야기를 했다.

몇 해 전 괜찮은 회사에서 남들보다 오래 근무했고 퇴직하였으며,

퇴직 후 얼마 되지 않아 아내와는 가슴 아픈 사별을 하여 먼저 먼 나라에 먼저 보냈고,

아들 둘이 있는데 나름대로 잘 성장하여 지금은 둘 다 미국에서 자리 잡아 잘 살고 있으며 일 년에

서너 번 손자와 자식 보러 미국에 가고, 여기에는 그 혼자 산다고 했다.


그녀는 남자가 혼자 살기에 불편한 것이 많을 땐데 왜 미국에 가서 자식들과

같이 살지 않느냐고 불안한 눈빛으로 이야기하였다.


그는, 그의 아내와 사별한 이후 혼자 살기로 결심하였고,

그래야만 사별한 아내에게 도리인 것 같기도 했다.

낮 설은 미국 생활도 그렇고, 그래도 혼자 살면서 이것저것 해 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아 혼자 살고 있지만,

요즈음은 그 지루함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느끼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해서 그녀와 그의 대화는 시작이 되었고,

그날 두 사람은 서로 통성명을 하였다.

그는 “저는 장철수”입니다.

그녀는 “저는 김향란이에요”

그는 71살의 소띠이고 그녀는 68살의 용띠였다.


“지금 죽어도 그리 섭섭한 나이는 아니다.”라고 하면 웃으며

이로써 그들의 신상은 서로가 파악하게 되었고,

그날 이후는 서로가 이름을 부르자는 약속도 하고 헤어졌다.


그다음 날 그리고 또 그다음 날도 어김없이 공원에서 만났고,

같은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동안 서로 나누었다.


그녀가 특히 주말에 공원에 나올 수가 없는 이유는

가족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러 가거나 손자들과 지낸다고 했다.


그는 참 부럽다고 말하고 자신의 가족을 생각해 보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지막 사랑, 그리고 마지막 이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