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사랑, 그리고 마지막 이별

제3장 벤치 사이의 거리, 벚꽃 아래 첫 인사

by 장윤길

공원에 도착한 그는,

그가 매일 앉았던 벤치를 본 순간 그는 무척 당황했다.


은빛머리카락의 그녀가 그의 벤치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평소 그녀가 앉은 벤치를 쳐다보았으나

그 벤치는 비워있었다.

주변의 다른 벤치들도 비워있었다.

그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가 아직 그의 벤치까지 가기에는 얼마간의 거리가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 자리는 나의 자리이니 비워 달라” 고 하면 어떨까?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공원벤치에 “임자가 있냐? 고 따지면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주변에 빈 벤치도 많은데,

굳이 “같이 앉아도 될까요?”라고 묻기도 어색했다.

괜히 실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더 어려운 일은 “같이 앉아도 될까요?” 하는

그 말을 할 용기가 없었다.


진퇴양난이란 말이 이럴 때 쓰는구나,

생각하며 더 이상 벤치를 향하여 가지도 못하고,

물끄러미 그녀가 앉아있는 모습만 바보처럼 바라보고

멈춰서 있을 수밖에, 다른 방법은 머리에 떠오르지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는,

그의 자리가 아닌 다른 빈 벤치를 선택하여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힐끗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그의 가슴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녀도 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에는 그 자신도 어떻게 하여야 할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가슴은 멎을 듯하였고, 얼굴은 홍당무처럼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너무나 당황해서

꼭 무언가를 훔쳐본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 벤치에서 일어나 아무런 생각 없이

그 자리를 떠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슨 급한 일이 있는 사람처럼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마지막 남은 벚꽃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커피를 한잔 타 마시며 그녀의 많은 것을 생각하였다.

그녀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니 또다시 가슴이 뛰었다.


이런 감정을 느껴 본지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옛날 철부지시절

동네의 누군가를 훔쳐 본 후 느껴 던 그 감정이 떠올랐다.


하루 종일 소파에 앉아 그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너무 행복했고 또 내일이 기다려졌다.


“오늘 그냥 인사라도 해볼걸 그랬나?,

씩씩하게 말이라도 걸어볼걸 그랬나?”,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를 모르는 옛 시절 전차처럼,

그도 오늘 하루의 앞뒤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그날이 흘렀고 밤잠을 뒤척이며,

그 긴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이른 아침, 그의 모습은 처음 직장을 출근할 때 늦을까 서두르는 것처럼,

세수를 하고 몸단장을 하며,

차림이 괘 제제 하지는 않는지?,

무슨 책을 들고 갈까?,

휴대폰의 커버는 지져 분 하지는 않나?,

많은 준비가 필요하였다.


그러나, 아직 공원으로 갈 시간은 턱없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아직 많은 준비가 더 필요하다고 그는 느끼고 있었다.


그의 하루 일과가 이때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그녀를 인식하고서부터는,

거울도 자주 보게 되었고 주변의 정리정돈도 다시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를 만난다는 기대감에

그의 얼굴에는 자신도 모르는 미소가 보였다.


그는 생각했다. “오늘은 그녀를 보면 목례인사라도 할까?”

아니면 “안녕하세요.” 하고 말을 걸어볼까?

참 많은 상상하면서 공원에 갈 시간을 맞추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원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

다시 한 번 거울을 보고 자신을 다듬고 현관문을 나서 공원을 향했다.

공원에 도착한 그는 오늘도 또다시 놀랐다.


그녀가 오늘도, 그가 앉는 벤치에 또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어제처럼.....,

그도 어제처럼 다른 벤치에 앉아 책을 열어 읽어보려고 했다.

그런데도 도무지 책으로 눈이 가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본 순간,

그녀는 그를 향해 웃으며 목례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도 얼떨결에 같이 목례를 하고 책을 향하여 고개를 숙이고는 한참을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가 다시 고개를 들고 그녀를 보려는 순간

그는 또다시 놀라 기절할 것만 같았다.


그녀가 그를 향해 천천히 한 걸음씩 그를 향해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순간적으로 아마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닐 거라 생각하고 지나가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빗나갔고,

그녀는 그를 향해 조심스레 다가와 “안녕하세요?”

하면서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도 얼떨결에 “예” 하면서 그녀를 처다 보았다.


그날의 그녀 모습은 그의 기억 속에 남았고,

오랫동안 그 기억은 잊히지 않았다.


그렇게 인사를 한 그녀는 그의 옆에 앉는 것이 아닌가,

“앉아도 될까요?” 란 말 한마디 없이 당연히 자기자리인양 그렇게 앉았다.

그는 너무나 당황해서 얼른 옆으로 빗겨 앉았다.


그는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녀를 처음 본 날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은 나에게 상당히 기억이 되는 날이라 기억을 한다.

4월 19일, 그가 어렸을 때 그의 형이 데모로 다쳐서 병원에 실려 갔고,

그 여파로 그의 형은 참 어려운 삶을 살았기에,

그 날이 훗날 4.19 란 이름으로 기억되는 날이어서 그는 그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은 화사했던 벚꽃을 대신하여

철쭉, 연산 홍이 만발하여 주변을 뒤덮고,

목련 꽃 향기가 벤치주위를 감싸던 그날이었다.


그녀가 옆에 앉자 그의 머릿속에는 순간적으로 만감이 교차하였고,

어떻게 하지? 하면서 “안녕하세요?” 하고 말문을 열었을 뿐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심장은 오랫동안 잠들어 있다가

지금 막 깨어난 것처럼 작고 강하게 뛰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그에게 “제가 선생님의 자리를 차지하여 미안해요”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아니, 아니 괜찮습니다.” 라고 답하고 그녀를 다시 쳐다보았다.


은빛색깔의 머리카락,

화장기 없는 하얀 얼굴,

그리고 입가의 미소,

커다란 눈망울,

그가 본 그녀의 첫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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