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말 없는 기다림
그녀는 오후 두 시를 조금 지나는 시간에 왔다가,
오후 세 시 무렵이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녀가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 동안,
그도 그늘 그의 자리에 앉아 있으며
그의 눈길은 그녀에게 머물었고,
이런저런 조심스러운 상상이 하나둘 피어났다.
“몇 살이나 되었을까?”
“어디에 살까?”
“왜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나처럼 앉아 있을까?”
그런 생각만으로도
그의 답답하고 지루했던 일상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혹시 그녀도 나를 보고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 하나가 더 더해지면서,
그의 가슴은 조용히 술렁였다.
어떤 날은 그가 먼저 공원에 먼저 나온 날도 있었고,
어떤 날은 그가 조금 늦게 나온 날도 있었다.
먼저 나온 날은 그녀가 기다려졌고,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도 하게 되었다.
그가 그녀보다 늦게 간 날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녀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으로, 또 몇 날이 흘러갔다.
말도 없고 눈길도 없지만,
그녀가 나왔는지,
아닌지에 따라 그의 하루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에게 변화가 온 것은 이때부터였다.
“그녀가 나를 보고 있었다면 나의 모습이 초라해 보이지는 않았을까?”
“차림새는 괜찮나, 깨끗하게 보여야지,”
이런저런 생각과 행동으로 자연히 그는 하루가 바빠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벚꽃을 시샘하듯 봄비가 벚꽃을 떨어트리려고,
샘 난 모양으로 비를 내렸다.
비 오는 그날은 그는 공원에 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꾸 궁금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가왔고,
그녀를 보지 못하게 만든 봄비가 원망스러웠다.
다음 날, 날은 다시 맑아졌고,
그는 벌써 공원에 갈 생각으로 가슴이 벅찼고,
다른 한편으로는 혹시 그녀가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함께였다.
평소는 공원에 갈 시간이 아니었지만,
그날은 왠지 그도 서두른다고 느끼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지워졌다.
그전에는 하루가 그렇게 지루하였건만,
이제는 하루가 왜 이렇게 더디게 가는지 속으로 한탄도 했다.
비 온 뒤 맑게 갠 오후의 공원을 향해,
그는 크게 숨을 쉬면서 씩씩하게 걸어갔다.
이렇게 행복한 걸음을 걸어본 지가 언제였던가?,
생각해 보았지만 혼자가 된 이후 처음인 것 같았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느끼던 그 지루한 하루하루의 두려움이 어느덧 사라지고,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갔었던 기다림이 선뜻 곁에 다가올 줄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한 번도 가까이 가본 적도 없고,
한마디의 대화도 나눈 적 없었던 그녀에게
왜 이렇게 관심이 가는지 그 자신도 놀라웠다.
그런 생각도 잠시,
그는 행여 그녀도 나를 보고 있었다면
그녀는 나를 어찌 생각할까 하는 궁금증이 앞섰다.
그는 생각이 많아졌다.
송창식의 노래 “한 번쯤”이란 가사가 머리를 스쳐 갔다.
“한 번쯤 말을 걸겠지” 하면서……
“그냥 이렇게 그녀를 훔쳐보면서 상상의 날개만 펴보아도 지금 행복한데
괜히 말을 붙여 두려움을 만들지 말자”라고 그는 속으로 다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