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장미꽃과 카페, 마음을 건네다.
그녀를 처음 보았던 그 시기의 벚꽃 대신,
어느새 장미로 물들었고 장마의 계절인 오월이 되었다.
공원의 주변은 온통 장미꽃으로 채워져 있었고,
울타리도 개나리 울타리에서 장미꽃 울타리로 새 단장이 되었다.
그는 장미를 쳐다보며 참 곱게 피었다고 생각하며
몇 송이 꺾어 그녀에 주기로 마음먹고
장미꽃에 다가갔지만,
쉽게 꺾을 수 있는 장미꽃이 아니었다.
가시가 쉽게 꺾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휴대폰의 시간을 보았다.
아직 그녀가 나올 시간은 좀 일렀다.
그는 쟨 걸음으로 아파트 상가의 꽃가게를 찾아가서
빨간 장미꽃 한 다발을 쌌다.
그녀가 오면 선물하리라 하고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가 왔다.
그는 그녀에게 인사하고 그 빨간 장미꽃 송이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무척 놀라는 눈치였다.
그 장미를 받아 들고서는,
“결혼 일 주년 남편에게 꽃다발을 받아보고는 오늘이 처음이에요.”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무척 기뻐하면서 “고마워요”라고 했다.
그녀는 “지난 세월 중에 행복했던 날들이 있었지만,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여자와 꽃 사이에는 이런 감정이 있구나?”
그는 생각하고 이 공원의 계절별 피는 꽃에 관하여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 꽃들이 필 때마다 다시 선물하리라 약속했다.
오월의 초순이나 햇살은 무척 따가웠다.
공원 벤치에 오래 앉아 있기에는 조금 부담이 되는 날씨였다.
그날 그는 그녀에게 “가끔 가는 카페가 있는데, 같이 가실래요?” 물어보았다.
그녀도 고개를 끄덕이며 선뜻 승낙하였고,
둘은 처음으로 공원을 떠나 나란히 걸었다.
마치 부부가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것 같은 가벼운 걸음걸이였다.
햇볕은 따가웠다.
행여 그녀의 얼굴이 타지나 않을까 걱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처음 그녀의 얼굴을 보았을 때 창백함을 느꼈지만,
오늘은 그리 창백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녀가 화장을 조금 한 것은 그도 느낄 수 있었다.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 그는 그녀에게 무엇을 마시고 싶은지 물었다.
그녀는 “철수 씨가 주문하는 걸로 같이 마실게요.”라고 했다.
그는 카라멜마끼아토 커피를 마실 거라고 했다. 그녀도 좋다고 했다.
그는 카운터에서 주문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커피를 좋아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커피보다는 차를 많이 마신다고 말하였다.
그는 차보다는 커피를 즐겨 마신다.
혼자 집에 있을 때는 원두커피를 내려 그 향을 음미하며 천천히 마신다.
커피 향이 참 좋다.
그러나 밖에서 커피를 마실 때는 언제나 캐라멜마끼아토를 즐겨 마신다.
그 이유는 일단 커피 이름이 참 특이하다.
그리고 남들 앞에서 이 커피를 시키면 자신이 조금은 젊은이에게 가까이 있다는 느낌도 있고,
괜히 어깨가 으쓱 하기도 하였다.
커피 맛 또한 어릴 때 먹어본 캐러멜 맛도 있고 달콤한 꿀의 맛도 느낄 수 있고
원두커피처럼 커피의 강한 향은 아니지만 커피의 향도 충분히 음미할 수 있어서 그 커피를 시킨다.
언젠가 미국의 아들 집에 갔을 때 아들이 “아버지 이제는 커피 말고 차를 마시세요.” 하면서
제법 좋다는 차를 귀국길 가방에 넣어 주었다.
집에 와서 그 차를 혼자 끓여서 마셨지만,
그냥 씁쓸하고 떫은맛이 그에게는 잘 맞지 않아 찬장 위에 그대로 올려두었다.
커피가 나왔다.
그는 천천히 커피 맛을 음미하여 첫 모금을 마셨고,
그녀도 따라 마셨다.
그는 그녀가 커피잔을 들고 있는 손을 보았다.
두 손으로 커피잔을 잡는 그녀의 손은 너무 희고 가늘었다.
왠지 가슴이 울컥했다. 아내의 손이 기억났다.
병원에서 만져본 피 묻은 손, 그리고 입관 때 본 아내의 손이 그렇게 희고 가늘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는 그녀가 그리 커피의 맛을 음미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이 커피, 향란 씨 입맛에는 안 맞는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웃으면서 “그게 아니라, 병원에서 커피는 되도록 삼가라는 말을 들어서 그래요.”라며
개의치 말고 그냥 마시라고 했다.
그리고 “철수 씨가 커피를 마시는 것만 보아도 이 커피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였다.
“아니, 병원에 가셨다고요? 어디 안 좋은 곳이라도 있나요, 향란 씨.”
그는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나이 든 사람들이 하는 일반적인 답변이었다.
“종합 진단 결과가 커피나 육류는 조금씩 하라고 하네요.”
그들은 커피를 마시고 한참을 그 카페에서 건강 이야기,
친구 이야기, 철부지 손자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또 손자를 데리러 간다며 출발했고,
그녀의 손에는 장미꽃다발이 들려있었다.
저만치 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가볍게 보였다.
그도 흐뭇하게 마음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쳐다보다 그도 발길을 돌렸다.
그는 생각해 보았다.
“내일은 무슨 이야기를 하지?
”다른 좋은 이벤트가 없을까?” 머리를 짜기 시작했다.
영화 구경을 한번 갈까?, 아니면…,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은 다시 만나자고 한 번도 약속한 일이 없었다.
매일 그 공원 그 벤치로 가면 서로 만날 수 있었기에
지금까지 한 번도 약속이란 것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몇 날 동안 그들은 같은 시간에 만나서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를 하며 계절의 여왕 오월의 날들은
어느덧 조금씩 가고 있었다.
그런 행복한 날들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