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그녀의 이야기, 그리고 삶의 흔적
그녀는 다시금 나에 대해 알고 싶다며 지나온 이야기를 해달라고 다시 부탁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고향이 어디이고, 집안은 어떠했고, 학교는 어디를 다녔으며,
직업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회사에 다녔고,
아내는 어떻게 만났으며 자식들이 왜 미국에 살는지를 영사기의 필름을 돌리듯 이야기하였다.
그녀는 다소곳이 앉아 그의 말을 경청하였고 가끔은 행복했던 시절의 이야기면 반가운 표정을 지었고,
어려운 시절의 이야기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내의 죽음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는 그의 눈에도 어렴풋이 눈물이 보였다.
그가 퇴직하고 2년간은 너무 재미있게 지냈다.
한때 유행했던 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였다.
그의 아내는 정말 그에게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 우리 떠납시다.” 하고 여행을 시작했다.
자식이 있는 미국으로, 겨울에는 동남아로 여름에는 호주로 정말 많이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떠나려고 그렇게 서둘렀구나 싶었다.
그리고 3년 전 겨울날 미끄러운 길에서 덮쳐온 차에 치여 그렇게 세상과 이별을 했다.
그녀도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 이야기를 했다.
너무 어렵게 살아서 그런 가슴 아픈 이야기가 없다고 했다.
중매결혼을 했고, 결혼 후 1년 만에 큰 딸을 낳았고,
그리고 남편은 중동의 건설 현장으로 3년간 파견근무를 하게 되었고,
1년에 2번의 휴가가 전부였다고 했다.
그 시대에는 그랬었다.
첫 번째 휴가 때 둘째를 가졌고 3번째 휴가 때 둘째를 낳았다고 했다.
그때 그녀는 병원에 근무했고 애들은 그녀의 엄마가 와서 키웠다고 했다.
둘째가 돌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장에서 불이나
그녀의 남편은 그때 저세상으로 보냈고 애들을 키우느라 30년 가까이 병원에 근무하여 세상의
다른 삶의 이야기나 남들의 이야기는 잘 모른다고 했다.
병원에서 죽는 사람은 많이 보았지만,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다고 했다.
오직 자식을 키워야 했고 다른 것은 둘러볼 여유가 없었고,
덕분에 두 딸은 잘 커서 지금 가까이서 잘 살고 있어 큰 걱정은 없었다고 했다.
“남편에 대한 기억도 희미하고, 남자에 대하여서도 잘 몰라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래도 그가 그녀보다는 조금 행복했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그녀의 이야기를 대충 하고서는 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전번 겨울, 눈이 오는 어느 날 공원을 갔는데,
누군가가 앙상한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눈을 무슨 쇄 막대기로 털어내는 사람을 봤어요.
그래서 철수 씨를 기억하고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추운 날씨가 아닌 날이면 그녀는 가끔 공원을 산책하였는데,
산책할 때면 눈 오던 날의 그가 늘 상 그 벤치에 앉아서,
책은 손에 들고 있었으나, 책보다는 앞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를 보고서는 무슨 사연이 있을까 궁금하였고,
또 생김새나 차림이 신사의 멋이 났다고 했다.
웃으며 하는 말이 “관심이 많았다” 고했다.
그래서 그가 앉은 맞은편 벤치를 정하여 그녀도 앉았다고 했다.
그녀가 말한 그 겨울 눈 오던 날을 그도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이 그 아내의 기일이었다.
그는 아내가 죽은 후로는 눈이 오는 날이 그렇게 싫었다.
특히 나뭇가지에 남은 눈은 더더욱 싫었다.
눈이 떨어져 꼭 누군가를 다치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 나뭇가지의 눈을 틀어 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날이었구나 생각했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지만, 여름의 긴 해가 어느덧 서서히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시장기를 느꼈다. 그는 여기서 저녁을 해서 같이 먹자고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딸이 저녁을 해놓고 기다린다고 하면서
같이 저녁 식사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서는 “철수 씨의 손은 참 부드러워요,
남자 손 같지가 않아요, 제 손보다 더 부드럽다는 것을 제가 느끼니까요.” 하면서 한참을 서로 쳐다보면서
손을 꼭 잡고 웃고 있었다.
와락 껴안고 싶었지만, 아직 그런 용기가 없었고, 혹시 그녀가 당황하면 그 뒷감당도 불안해서였다.
이 손잡음이 그녀와의 마지막 손잡음임을 그는 후에서나 알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집을 나섰고 그는 그녀의 아파트 정문 입구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렇게 행복했던 몇 날이 지나고 나서,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내일은 날이 더울 것 같으니,
카페에서 공원 가는 시간에 만나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