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평범성과 나, 그리고 학교 조직 안에서의 용기
며칠 전, 나는 과학동아에서 한나 아렌트의 개념 ‘악의 평범성’을 다룬 글을 읽었다.
그 문장은 조용히 내 안에 내려앉았다.
“보통의 사람이, 아무런 악의 없이, 체제에 복종하며 악을 행할 수 있다.”
악은 거창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주어진 규정대로 따르고, 관행을 반복하며, 문제를 애써 외면할 때
우리는 이미 그 평범한 악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더 놀라운 건, 우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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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사다.
그리고 조직 속에서 함께 일하는 구성원이다.
우리는 함께 교육과정을 만들고, 제도를 논의하며, 학교를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너무도 쉽게
‘위에서 내려온 거니까’, ‘다 그렇게 하는 거니까’, ‘나 하나 말해봤자 바뀌겠어?’
하는 마음으로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무심함은 때로
단 한 명의 교사를 소외시키고,
한 명의 아이를 구조 속에서 놓치게 하고,
소수의 목소리를 침묵하게 만든다.
특히 인사 과정이나 제도 도입, 평가 방식 등을 결정할 때
충분한 숙의 없이, 업엔 다운으로 밀어붙이는 절차는
결국 공동체 전체에 신뢰의 금을 만든다.
그것은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악의가 아니라
“절차대로 한 것”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된 ‘악의 평범성’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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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이렇게 다짐해 본다.
나도 현재 부장역할을 맡고 있고 언젠가는 관리자 역할을 맡게 될 수도 있다
지금도 어떤 결정의 한 부분에 관여하고 있다면,
그 순간만큼은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효율적으로’가 아니라
‘조금 더 민주적으로, 조금 더 공존적으로’ 생각하겠다고.
한 사람의 판단보다는 여럿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침묵 속 신호에도 귀 기울이겠다고.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다소 느려도,
그 과정 자체가 함께 살아가는 교육의 실천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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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이 평범하다면,
선도 평범하게 시작되어야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가치일지라도
실제로 따르고 실천하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이다.
나는 그 평범한 용기를 가진 교사가 되고 싶다.
그리고, 부장역할이나 언젠가 관리자가 된다면
조금 더 귀 기울이는 사람, 조금 더 함께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