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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 Aug 25. 2022

08.의전은 어려워 #1

하와이에서의 기록

늘 입국장 외부에서 기다리다가 직원이나 조업 직원이 모시고 나온 VIP를 배웅 나온 가족이나 여행사 직원에게 무사히 인계하고 인사를 드리는게 임무였는데, 출발과 도착에 서로 다른 VIP가 나오게 되면 그야말로 10분 거리의 수속 카운터와 입국장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왕복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이것도 쉽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동시 다발적으로 도착하거나 출발하는 경우이다. 그럴 때엔 적절하게 눈치껏 직원과 나의 역할을 분담했으나 본사에서 반드시 지점장이 모셔야 한다고 강조한 VVIP가 동시에 한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경우가 발생했으니 그날도 참 땀 많이 흘렸다.


한 분을 모시고 후다닥 저쪽으로 가서 마중 나온 운전기사에게 인계하고 돌아서서 다른 VVIP께 달려갔다. 그 분 曰 “전 지점장 출근 안한 줄 알았는데 나와 계셨네요. 어디 다녀오시는 길인가 보군요.” “아.. 네.. 제가 화장실이 급해서요. 죄송합니다. 빨리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여행하시느라 불편한 점은 없으셨습니까? 오늘 하와이 날씨가 참 좋습니다. 곧 소니 오픈도 개막하니 관람하고 가시겠네요.“ 정말 아무 말 대잔치를 하며 잠시간의 지점장 부재를 그 분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고자 노력했고 다행히 더는 묻지 않으시고 그날의 의전은 끝이 났다.


또 다시 비행기가 지연되어 승객들의 불만이 신입 직원들을 향해 쏟아지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었고.


의전과 관련해서는 별도의 장을 마련해야 할 정도로 에피소드가 많으나, 이 장에서는 한 두개만 소개하고자 한다.


부임한지 몇 달이 되어 정상적으로 AOA Badge도 발급되었고 다소 편안한 맘으로 긴장을 덜고 의전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게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회사의 회장님 동생분 일행이 가족 여행을 오셨다. 그분 남편분께서도 유명한 그룹의 회장님인대다가 따님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인이었다.


근데 하필 그날 다른 VIP들도 동시다발적으로 같은 항공편으로 도착했다. 난 그 동생분의 얼굴을 본적이 없었고 인터넷을 통해서 사진으로만 익혔지만 쉽게 인지 하리라 생각했다.


항공편이 도착 후 도어가 열리고 역시나 캐빈매니저는 좌석번호를 열거하며 누구 누구 누구 탑승하셨으니 의전서비스를 부탁드린다며 인계를 해주었다.


 그 순간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하필 다른 VIP께서 내게 “지점장이 나오셨군요. 어서 가시죠.” 느낌이 약간 어색했지만 그 동생분의 남편이라고 생각한 나는 자연스럽게 입국장으로 모시기 시작했고 셔틀버스에 탑승을 도와드렸다. 그런데 ‘이상하네 분명 엄마, 아빠, 딸, 그리고 또 한 두분 더 있다고 했는데 부부만 딸랑 계시네? 흠. 느낌 안좋다.’


셔틀버스에서 내려서 입국장의 Expedite Lane(도착 후 입국심사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별도 라인. 주로 몸이 불편하신 손님이나 VIP 등이 사전 허가를 받아 이용 가능함.)으로 모셨는데 이것도 또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별도의 사전 허가를 득하지 않았다면 그 구역을 담당하고 있는 CBP 안내 직원과의 안면도 중요하기 때문에 친해지면 VIP가 아니더라도 슬쩍 말도 안되는 영어로 부탁해서 빠르게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처음에 부임해서는 미국은 그런 제도가 없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역시나 사람 사는 곳이라 인맥이나 지위를 통한 청탁 등은 한국보다 더하기도 했다. 어쩌면 하와이라는 고립된 섬의 특성일 수도 있으니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반적인 일이라고 정형화하기는 무리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상한 느낌이 지속되어 모시고 있던 그 부부의 여권을 잠시 보자고 말씀드렸다. 여권을 펼쳐 든 순간 너무 놀라서 여권을 바로 다시 돌려드리고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어쩐지.


아까 버스에서 중년의 여성분이 나를 자꾸 쳐다봤는데. 역시나 거기였다.


제기랄!! 난 죽었다. 


이미 그 분들은 일반적인 승객들과 함께 입국심사를 통과해서 가방을 찾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는 후다닥 달려가 “안녕하세요”하고 꾸벅 인사를 드렸는데.


그 분의 첫마디는 “이제야 찾으셨네요?” 순간 소름이 돋으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회장님 여동생인데 의전을 실수 했으니 이제 난 한국으로 소환되겠구나. 열심히 일했는데 몇 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다니 짜증이 나기도 하겠지만 이제 막 입학을 마친 아들 교육은 어쩐담.


“실물을 뵌 적이 없어 인터넷으로 사진을 찾아 보았고, 사진보다 훨씬 미인이어서 알아 뵐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호호호. 사진으로 사람을 알아보긴 힘들죠. 그럼 어서 가시죠.”


다행이 나의 전성기 때 순발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으나 등 뒤에서 비처럼 흘러내리는 땀은 막을 수 없었다. 흥건하게 젖은 셔츠를 감추며 일행 분들을 모시고 마지막에 배웅하는 순간 그 여동생의 남편, 즉 또 다른 재벌의 총수 분께서 살짝 웃어 주시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내 베베 꼬인 마음으론 이렇게 그 분 표정이 읽혀졌다. “아이고 이놈아. 먹고 살려고 고생이 많다.“


미국내에서도 하와이는 부자 동네이다.


고급 저택도 많고 날씨가 온화하여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재벌 총수들이 겨울철 마다 한국의 혹독한 추위를 피해 몇 달씩 머물다 가곤 했다. 무한도전, 우결 등 유명 프로그램 촬영도 이어지며 연예인 뿐 아니라 미국 배우, 하와이 주지사, 유명 정치인 등 정말 평소에 TV에서나 보던 사람들을 많이도 모셨었다.


사실, 직원들은 이런 하와이의 특수한 상황을 즐기고 좋아하는 연예인을 잠시나마 볼 수 있음에 좋아했지만, 지점장인 나는 그 와중에도 유명 예능 프로그램의 촬영 장비 세관 통과와 연예인의 유명도에 따른 좌석 배정 등에 많은 신경이 쓰였고 VIP의 경우에도 좌석 배정과 가방 탑재에 신경이 쓰여 마냥 좋아할 수 만은 없었다.


매년 1월이면 라스베가스에서 CES라는 큰 행사가 열린다. 그 즈음에 한국의 많은 기업들의 임직원들이 그 행사에 참석 후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반해, 그 재벌 총수님은 늘 하와이를 들려 잠시 개인 일을 보고 우리 회사 항공편으로 한국으로 복귀하시는 게 연례행사였다.


처음 그 분을 뵈었을 때는 너무도 무뚝뚝하고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왔기에 엄청나게 긴장하고 신경을 썼었다. 매년 우리 회사의 해외지점장이 유일하게 1년에 한번 한국을 공식 출장으로 복귀하여 회사에서 개최하는 전략경영세미나를 참석 후 신체검사와 개인적인 용무를 마치고 부모님과 친구들과의 식사자리를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난 그 소중한 순간을 만끽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CES와 전략경영세미나의 일정이 겹치는 해가 많았고 거의 매번 그 재벌 총수님을 의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내가 탄 비행기가 호놀룰루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슈퍼맨처럼 회사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며 미국 국내선 게이트로 달려가 라스베가스에서 도착하는 그 분의 회사 일행을 맞이한 적도 있다.


전술 했지만 초반에는 너무 긴장하고 어려웠던 그분이 오시는게 무섭고 힘들었지만, 점차 익숙해지고 친숙해지면서는 농담도 건네 주시고 가끔 직원들에게 식사라도 사주라고 하시며 큰 돈을 용돈으로 주시는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는 맛있는 김치라며 총각무, 배추김치를  가져다 주시기도 했다. 물론 그 옆에서 나처럼 양복을 입고 의전하고 있는 수행비서의 어깨에 노트북 가방 대신 김치 가방을 들게 하시는 건 좀 불편 했지만.


아무튼, 물질적인 내 성향 상 용돈도 주시고 맛있는 김치도 가져다 주시는 그 분이 주재 복귀시점에는 오히려 기다려졌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직도 내 자신이 우습다.


사족이지만 그 김치 아주 유명한 호텔 상표의 김치였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너무 가격이 비싸서 못 사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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