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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 Aug 25. 2022

07.고생의 시작

하와이에서의 기록 

A4 용지를 벽에 걸어놓고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10, 9, 8, 7.. 직원들은 너무 싫어했지만 나름 나에게는 그 10일간의 여정이 모든 것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재점검하는 규칙이었다. 우리 회사가 하와이언항공과의 조업 계약을 끝내고 전문 조업사와 계약을 진행중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이미 그들의 조업 품질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특히, 하와이언항공이 독점으로 사용하는 터미널에서 항공기를 띄우던 시절에는 워낙 그 터미널이 노후화되어 거의 매일같이 수하물 벨트가 고장이 나고는 했는데, 부임 초반에 그나마 남겨진 가방들을 옮기는 척이라도 했던 조업직원들이 계약 종료가 다가올수록 게을러지고 나의 지시에 거의 응하지 않았다. 


그날은 잊지 못한다. 


여느 때와 같이 만석인 비행기에 손님을 응대하던 중 아니나 다를까 수하물 벨트가 멈추어 서버렸다. 이미 많이 경험 했던 터라 별로 놀라지도 않고 카트에 짐을 옮겨 실으며 조업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헤이 에이미. 플리즈 테이크 디즈 백스 온 투 더 카트. 헬프 미.” 뭐지 이 반응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조업사 매니저는 이렇게 말했다. 


“너네 항공사 다른 회사랑 조업 계약 한다며? 우린 이제 이런 거 안해! 몬해! 우리 조업계약에는 가방 옮기라는 항목은 읎어! 너가 직접 들어 옮기던 말던 알아서 해. 나 커피 한잔 하고 올게. 빠빠이~”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유니폼으로 하와이언셔츠 착용은 불가하다는 본사의 지침(하와이를 취항하는 대다수의 항공사들은 하와이언 셔츠를 유니폼으로 착용한다.) 덕분에 입고 있던 더블로 된 양복 형태의 유니폼 자켓을 벗어 던지고 넥타이를 풀며 23kg에 육박하는 가방을 하나씩 카트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나마 신입으로 뽑은 직원 한명이 어차피 AOA Badge(세관 지역을 출입할 수 있는 상주 직원용 ID 카드. 흔히 한국에서는 Ramp Pass라 불린다.)가 없어 세관 지역으로 들어갈 수도 없기에 역시나 AOA Badge가 없는 내 곁에 남아서 힘겹게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방을 옮겨 엘리베이터로 수하물 지역으로 내려 보내고는 잠시 쉬는 중 일이 터졌다. 


워키토키에서 수하물 담당 직원 한명이 급히 지점장을 찾으며 외치는 말. 


“지점장님! 우리 손님 가방에서 폭발물이 발견 되었대요!” “뭐라고? 폭발물? 말이 되는 소리야? 우리가 무슨 중동계 항공사야? 어떻게 발견 된 건대?” 지지직.. 지지직.. “보통 대다수 가방들은 수하물 벨트를 통과하면서 엑스레이로 자동 점검이 되는데 벨트가 망가지는 바람에 수동 검사가 진행되었고, 폭발물 탐지견 강아지 (K-9, 경찰견 또는 군견, 개를 뜻하는 Canine을 발음이 같은 K9으로 치환한 단어.), 한 마리가 검정색 가방 주위를 몇 바퀴 돌다가 앉아버렸어요! 거기에 앉으면 폭발물 의심되는 거래요.” 지지직.. “그래서 지금 TSA(Transportation Security Administration, 미국 교통안전청) 직원, 폭발물탐지반 등이 이미 와서 바리케이드 치고 있어요!” 지지직.. 하늘이 노래졌다. 


이미 비행기는 수하물 벨트 고장으로 인해서 1 시간이 넘게 지연이 되고 있었고, 본사의 종합통제팀으로부터 언제쯤 항공기 출발이 가능하냐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었다. 


AOA Badge를 발급받은 직원 한 명은 수하물 지역에, 또 다른 직원 한 명은 도어사이드에서 캐빈매니저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이미 탑승이 완료된 손님들의 불편을 해결하고 있었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어서 적지 않게 당황한 상태에서 백인 TSA 직원이 지점장인 나를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했다. 나름 영어를 써봤지만 정말 급박한 상황에 아는 지식은 없고 다소 고압적인 그의 영어 발음은 더더욱 알아듣기 힘들었다. 신입직원을 통역 삼아 “나는 모르겠다. 그 손님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라는 힘겨운 말을 반복하고 풀려났다. 그리고는 그 손님을 하기해서 역사열(출국심사 취소. 단, 하와이는 국제선의 경우에도 출국심사대가 없기에 자유롭게 밖으로 나올 수 있고 다시 면세 지역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경우 보안 검색대만 통과하면 된다.)후 카운터 앞으로 불러와서 TSA 직원과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말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시간은 참으로 더디게 지나가고 있었다. 


해당 손님을 설득하여 하기 후 다시 카운터 쪽으로 직원이 모시고 나오고 있었다. 날은 덥고 이미 땀은 차고 숨은 가빴다. 담배가 너무 간절했는데 사방이 낯선 호놀룰루국제공항. 


온통 ‘NO SMOKING’ 표지만 가득할 뿐 그 어느 곳에도 흡연을 할 만한 공간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호놀룰루국제공항은 자연친화적인 개방형 형태로 자연스럽게 하와이의 싱그러운 바람을 카운터 쪽으로 불어오게 하는 형태였고 난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이리 저리 눈치를 보다가 구석에 앉아 회사 유니폼 자켓을 벗고 다시 넥타이를 풀고 회사 배지를 떼어 냈다. 


우리 회사 직원이라는 모든 표식을 임시 제거 후 급하게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마도 내 평생에 가장 눈치를 보며 가장 급박하게 빤 2-3모금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나마도 금연지역에서의 흡연으로 인해 경찰이 출동하여 권총 사살 될까 두려워 오래 하지도 못했다. 그래도 그 짧은 시간 얻은 것은 하나 있었다. 

다시 돌아온 머리 회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돌아와서 잠시 후 도착한 손님들을 보니 내 예상과는 다른 분들이었다. 테러범 인상을 기대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손녀, 세 분의 손님이었던 것이다. 어린 소녀는 울먹이며 할머니 치마를 부여잡고 있었고 할아버지의 말씀을 직원이 통역했다. “뭐가 들어 있나요?”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딸 내외가 바빠서 우리끼리 손녀 데리고 여행 왔었고 잘 놀다가 들어가는 길인데 이게 무슨 영문인지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긴 시간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었고, 결국 나는 더 이상의 비행기 지연을 지켜볼 수 없어 일단 비행기 출발을 지시했다. 이미 비행기는 떠나버렸고 울상이 되어버린 그 손님 세 분은 점점 지쳐갔다. 그 사이 폭발물 해체반은 가방을 해체하고 내부를 살폈다. 


아 이럴 수가. 사연은 이랬다. 


할머니가 현지에서 판매하는 꿀이 진짜라며 두어병을 구매하셨고 그 병을 꼼꼼하게 싸긴 했지만 공항의 수하물벨트가 고장 나는 바람에 이리 끌고 저리 끌어서 내려 보내는 과정에 꿀병이 깨져버렸고 가방 내부에서 액체가 범벅이 되면서 향긋한 냄새가 솔솔 올라 온 거다. 


그걸 강아지가 폭발물로 착각했네요. 


그럼 결론은 다이나마이트 냄새가 달콤 한건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수하물을 수속 후 보안검색을 하는 과정에서 X-Ray에 걸리는게 라이터, 스프레이 등으로만 알고 있지만 밀도가 높은 꿀 같은 액체류도 검색이 된다는 사실 알아두면 나쁠 것 없을 것이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매일 운항 행사일이 왔다. 총영사님, 한인 회장님, 여행사 사장님, 시장 등을 모시고 케익을 자르고 훌라 춤 공연이 이어졌다. 약간 허탈했지만 그런 광경이 감격스럽기도 했다. 어려웠지만 무탈하게 청사를 이전해서 손님을 모시고 새로운 카운터에 우리 수속 시스템을 통해 정상적인 보딩 패스와 백택을 프린트하며 수속을 진행 한 것이다. 


준비를 많이 한 만큼 어려웠지만 무사히 비행기를 띄워 보냈다. 


D+.., 그 후.. 정말로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화물 계약이 되지 않은 상태인데 그걸 모른 한국의 직원이 아주 거대한 Surf Board를 수속해서 보내는 바람에 여기 저기 사정을 다니면서 해결하기도 했고, 매일 운항 첫 달 회사의 회장님, 사장님, 임원님, 고문님, 팀장님 지인으로 VIP가 하루에 20명이 동시에 도착하는 바람에 몸이 열 개라도 그 분 모두를 한 분 한 분 의전 할 수 없어 정신없이 땀만 흘리기도 했다. 


지점장 부임 직전에 친한 공항 출신의 후배 녀석에게 밤늦게 맥주 한잔을 사주며 물었다. “도대체 해외지점에 발령받아서 지점장이 제일 중요하게 챙겨야 할 항목이 뭐니? 한 두개만 이야기 해주라. 넌 많이 들어서 잘 알잖아. 술은 내가 살게.” “엄.. 다 중요하지요. 그런데 딱 한가지는 잊지 말아야 할게 있어요. 술 취하지 마시고 이거 하나는 꼭 기억하세요. MAAS. 즉, 의전이에요. 그거 놓치면 일 아무리 잘해도 임기 전에 소환 당해요. 과거에 유사 사례도 있었구요.” “임마. 이해가 안되는데 비행기의 지연, 결항 등 비정상상황에 대한 유연한 대처, 손님들을 편안하게 모시는 서비스에 중점을 두고 일하라는 조언이 아니라 의전이 제일 중요하다고? 그럼 비정상 상황에서 VIP가 계시면, 지점장이 VIP 곁에 있어야 한다고?” “넵. 지금은 이해가 안되시겠지만 일단 정답은 말씀드렸으니까 술이나 드시죠.”


그 당시에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점차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매일 운항이 결정된 2012년 7월. 그 달은 VIP 의전 요청이 99건이나 접수되었다. 


인천공항에선 여러명의 직원이 돌아가면서 의전서비스를 수행하지만 해외 지점은 달랑 지점장 한 명으로 모든 의전건을 처리 해야 한다. 직원들은 항공기 운항에 필요한 업무를 수행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의 AOA Badge는 여전히 발급 전이라는 점이었다. 역시나 하와이는 모든 행정 처리가 상당히 늦었고 나의 Badge 진행 상태는 공항공사 직원에게 몇 번을 물어봐도 “난 몰라. 그냥 기다려. 넌 왜 그리 성격이 급해” 란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은 부임 4개월여만에 발급이 되었지만. 


AOA Badge가 발급 되어야 카운터지역에서 세관지역으로 직원 통로를 이용해 마음껏 드나들 수 있었고 도착 후 Baggage Claim지역까지도 이동할 수 있었다. 통상 항공기가 탑승교에 접현 후 캐빈승무원의 안내 하에 공항지점장이 VIP를 모시고 안전하고 빠르게 CBP(United States Customs and Boarder Protection, 미 세관국경보호국) 가 앉아 있는 입국심사대를 통과해서 Baggage Claim 지역에서 가방을 모두 찾아 카트에 실어서 터미널 밖으로의 길을 안내하게 되어 있다. 때에 따라서는 국제선 터미널에서 주내선 터미널로 안내 후 마우이나 빅아일랜드로 가는 항공편 탑승에도 도움을 드리는 것이 최종 임무이다. 


나는 AOA Badge가 없었기 때문에 매번 도착장 외부에서 여행사 가이드와 함께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약간은 부끄럽게도 유니폼 정장을 땀을 흘리며 의관 정제하고 하와이언 셔츠와 Lei틈에서 근엄함을 유지하다 보면 쳐다보는 현지 직원들과 관광객들 사이에서 원숭이가 되어버린 느낌도 들곤 했다. 그래도 우리 항공사인지가 금방 표시가 되니까 


‘나는 걸어 다니는 회사 광고판이다’ 


라고 생각하자며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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