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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 Aug 25. 2022

06.호놀룰루 공항서비스지점

하와이에서의 기록

정리를 좀 해보자. 우리 회사의 호놀룰루지점은 1993년 B767로 취항을 하며 몇 년간 주 3~4회 운항을 하던 중 IMF로 인해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불가피하게 단항을 결정하였으며, 그 후 수많은 복항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쟁사의 기재 경쟁력과 상용 고객의 충성도에 힘입어 복항 시점이 많이 늦추어졌으며, 하와이안항공의 신규 취항도 이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경쟁이 치열한 노선이었다. 따라서, 복항이라기보다는 거의 신규 취항에 가까운 노선으로 그 당시만 해도 신규로 도입한 최신 항공기인 A330-300의 투입을 결정하였고, 그중에서도 장거리 노선 운항이 가능하고 2 Meal 서비스가 가능한 4대의 항공기가 번갈아 가며 투입되고 있었다.


문제는 1997년 당시 너무 급박하게 단항을 결정했던 터라, 오랫동안 경쟁사를 떠나 당사를 이용해 왔던 교민들에게 자세한 설명은커녕 급박하게 지점을 정리하고 더 이상 운항을 하지 못했기에 현지에서 우리 회사의 이미지는 말 그대로 바닥을 치고 있었다. 즉, 긴급한 단항 결정은 현지 교민들의 불신을 가져왔고, 오랫동안 쌓아왔던 마일리지를 송두리째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으로 우리 회사에 대한 불만과 불신은 15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회자될 정도로 크게 잔존해 있었다. 그 점이 당사의 판로 자체가 현지 판매가 아닌 한국에서의 판매에 거의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중시켰으며, 현지 교민의 인식을 깨는 것은 직접 응대를 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항서비스지점장인 나의 몫이었다. 또한,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한국을 떠나기 전 사장님께 당부를 받은 바도 있었기에 더욱 어깨가 무거웠다.


남은 시간은 1개월 9일. 한국에서 지점장 인선에 시간이 허비되는 사이에 2012년 7월 10일 인천-하와이 매일 운항이라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이 낯선 사무실에 책상, 전화, 인터넷 연결부터 해서 각종 사무 장비 설치 및 공항서비스에 필요한 보딩 패스 등의 물품을 정리해 둘 창고 구축, 수속과 수하물 서비스, 지상 조업, 급유, 운항관리, 정비 및 기내식을 담당할 조업사 선정과 교육은 물론이거니와 미진한 계약까지 신경 써야 했으며 다소 오래된 외항사의 시스템으로 오프라인 수속을 대행해 주던 하와이안항공과의 계약을 종료하고 수속 카운터를 신규 설치하며 새로운 청사로의 전면 이전도 필요했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에 커다란 도움을 줄 직원 채용이 제일 관건이었다.


앞서 본 그 직원 외에도 공항에는 한 명의 직원이 추가 배치되어 있었으며, 다행히 그 직원은 조업사에서 DCS(Departure Control System)를 사용하여 수속을 경험해본 터라 신입 직원인 다른 직원과 함께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다.


도착 첫날부터 라이온스 클럽의 행사에 불려 나가 지점장이랍시고 월마트에서 급히 구입한 10불짜리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마이크를 잡고 회사 홍보를 진행하였으며, 여기저기 얼굴을 비추라는 행사는 왜 그리 많은지 피로도 풀 여력이 없이 누운 낯선 호텔방의 곰팡이 냄새나는 미국식 저질 매트리스 침대는 이미 지쳐버린 나에게는 그나마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차도 없는 상황에서 매번 출퇴근을 직원들의 도움 없이는 하기 힘들었고 즉석밥과 깻잎통조림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도 서서히 지겨워졌다. 미국에서 반드시 필요한 운전면허 취득, SSN(Social Security Number)를 받을 시간은커녕 휴대폰 개통할 시간도 없어서 선불폰을 몇 달이나 써야만 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이미 수많은 신규 채용 직원들이 회사 이름에 이끌려 입사를 했다가 1주일도 되지 않아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해 보더니 바로 그만두는 상황이 반복되었고, 매일 운항일은 다가오는데 사무실의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아 컴퓨터를 사용할 수도 없어 직원을 시켜 통신 회사에 전화를 걸게 해서 ‘계속 인터넷 설치 일자를 미루다가 항공기 운항에 차질이 발생하면 당신네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겠다’는 말을 당장 통역하라는 다소 거친 지시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늘 하와이에서는 다소 늦지만 (혹자는 이를 느림의 미학, 여유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난 아직도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 끝내는 해결이 되곤 했다. 그들의 그 여유로움도 바로 거기서 나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결국 청사 이전과 온라인 수속을 1주일 앞둔 시점에서야 인터넷 연결이 되면서 조업사 교육과 각종 보고서 작성 등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현지 직원 채용과 관련한 에피소드들도 많지만 몇 개만 짚고 넘어가야겠다.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하와이 현지 B/S(Base Staff) 채용은 인턴으로는 불가능하였고, 정규직만 채용을 진행하였는데 자격 요건이 나름 까다로웠다. 4년제 대졸에 영주권 또는 시민권자. 용모 단정하며 영어와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이중 언어 사용자(Bilingual).  이런 스펙이면 한국에서도 찾기 힘든 재원 아닌가. 그런데 막상 채용공고를 올리고 보니 어처구니없게도 나보다 나이 많은 심지어는 같은 대학 동문인 백수 아저씨, 이상한 술집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야시시한 아줌마, 한국말이라고는 드라마에서나 몇 마디 들어본 듯한 영어 발음조차 이상한 히스패닉계 청년,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극심한 경상도 사투리 억양의 아줌마.


도대체 인천국제공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잘생기고 예쁘고 착하고 일 생기면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면서 일 처리를 하는 성실한 젊은 직원들은 어디 있는 것인가. 결론적으로 그런 직원들이 있긴 있었고, 항공사라는 겉면의 화려한 모습에 반해 좋은 재원이 서류접수를 하기도 했지만 면접에서 급여 수준을 듣고는 연락 두절이 되거나, 선크림을 바르지 않은 덕분에 몇일만에 강렬한 하와이 햇살로 이미 소도둑놈처럼 보이는 내 얼굴을 보고는 질색하며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부임 초기에 수많은 직원 면접을 보았고, 몇몇은 미주지역본부와 본사와의 협의 하에 당장 합격 발표를 통보하기도 했지만 출근 후 신규 지점의 살인적인 업무량과 미국 근로기준법에 의거 당장이라도 소송이 가능할 것 같은 월 1~2회의 휴무일 부여 수준 등의 분위기를 보고는 유니폼 고이 접어 내 책상에 올려놓고 문자 메시지 딸랑 하나로 퇴직을 통보한 직원도 있었다. 물론, 다만 며칠 간의 일당은 받지 않을 테니 나에게 즉석밥 뜯어먹지 말고 가끔 테디스 버거라도 사 먹으라는 덕담을 덧붙이기도 하면서.


그래도 꾸역꾸역 채용을 진행했고 그렇게 입사한 수많은 직원들과 짧은 시간을 함께 했지만, 그중에서도 몇 명의 직원들은 의리 있게 끝까지 남아서 그 고역을 참아내며 어설픈 지점장의 지시를 마치 하늘에서 온 선지자의 계시 마냥 따라주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들과는 가끔 안부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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